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

심혁주 지음 궁리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

심혁주 지음
궁리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가 나를 알아주는 것인가? 소유와 물질을 과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뜨거운 피인가? 큰소리로 지식을 파는 것인가? 그런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의 본질을 ‘소리’와 ‘냄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움직이고, 움직이기 때문에 소리를 내고, 소리를 내기 때문에 냄새를 발산하고 그리고 타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소리와 냄새를 가지고 말이다.”

책은 심오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시작한다.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는 디지털과 비주얼의 시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리’를 통해 삶의 의미를 파헤쳐간다. 책이 특이한 만큼 저자의 이력도 특이하다. 책을 쓴 심혁주 한림대 HK연구교수는 사람의 시신을 독수리의 밥으로 공양한다는 티베트의 조장(鳥葬) 연구로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티베트 유학시절 100년 만에 왔다는 대지진을 경험하고 50년만에 왔다는 홍수에 휩쓸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죽음과 내일 중 어느 것이 더 빨리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티베트의 속담을 믿게 됐다.

‘눈’과 ‘혀’에 매몰된
시대에 던지는
내면에 관한 교훈

그가 유독 매혹됐던 소리는 티베트불교의 소리이고 경전을 독송하는 소리다. 1부 ‘소리는 고독하지 않다’에서는 티베트 수도승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리가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매일 소리 내어 경전을 읽는데,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있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수행의 처음이자 끝은 ‘소리내어’ 불경을 읽는 겁니다. 소리와 소음은 확연히 다릅니다. 소리는 따뜻하고 정(情)이 있지만 소음은 들을수록 불쾌하죠. 소음을 듣노라면 몸의 균형이 흩어집니다. 우리가 소리내어 경전을 읽는 이유입니다. 몸과 정신의 균형 찾기랄까요.” 

소리로 죽음을 위로하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의 귀에 대고 스님들이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어주는 것이 티베트불교의 전통이다. 사람이 죽어도 귀는 살아있으며 그것이 극락왕생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귀는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열려 있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귀는 다른 어떤 감각기관보다도 일찍 완성된다(53쪽).” 우리는 귀를 통해 곧 소리를 통해 자기 자신이란 존재를 최초로 인식한다. 하여 우리 존재의 본질도 귀에 있으며 영적인 성장도 귀에 달려 있다. “인간 존재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것은 바로 귀로 듣는 소리와 그것에 의한 의식의 각성에 있다(54쪽).”

소리에 대한 통찰은 한국인들의 영원한 어머니인 관세음보살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觀)’은 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들어오는 것을 분별하는 의미가 아니라 타자를 눈으로 보고 미추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는 눈이 관이다(57쪽).” 곧 관세음에서의 ‘관’은 단순히 ‘세상의 소리를 본다’는 시적인 은유를 뛰어넘는다.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들의 절규를 진심으로 온몸을 다해 들으며 이를 치유한다는 뜻을 갖는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만이 상대방의 내면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이밖에도 책은 ‘소리’들로 가득하다. 2부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는 저자가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실화이자 상상의 내용을 써내려갔다. 딸을 잃은 여인의 울음소리, 사람들이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는 소리, 동물의 소리를 알아듣는 소년 등의 간곡한 사연을 차분하게 들어주고 있다. 티베트에서 소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보이는 것들이 빈곤하고 황량한 탓이다. “티베트는 결핍된 공간이다. 산소가 부족하고 먹을 것이 없고 연료가 다양하지 않은 하늘 아래 고원. 그곳에 가면 결핍의 공간에서 결핍된 존재들이 어떻게 하루를 견디고 무엇을 믿고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눈과 혀 위주로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환히 보이는 것이 환영받고, 혀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대접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베트의 라마승들은 존재의 최소화를 수행의 기본조건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작고 작게 만들어야 타인을 볼 수 있고 자연과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294쪽). 삶의 의미에 ‘귀 기울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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