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문스님

바둑에서는 승부가 난 뒤에 서로가 그 바둑을 다시금 복기한다. 복기를 하다보면 자신이 왜 그런 수를 두었는지 더 나은 대안은 없었는지 반성할 수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는 자신이 둔 바둑을 복기함으로서 자신의 오류를 확인하고, 이를 반성함으로서 발전한다. 하지만 아마츄어는 자신이 둔 바둑을 잊어버리고 다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함께 출발했어도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천양지차의 결과를 보이게 되는 이유이다. 

돌아보면 많은 사찰지의 국립공원 강제편입으로 시작된 문화재관람료(문화재구역입장료)의 문제에 대처해 온 우리 종단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복기(復棋)를 통해 모든 과정과 결과를 명확하게 복기(復記)하는 과정이 없이는 대정부관련 사안에 대해 좌고우면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종단은 조직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사안이라는 자세로 그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세하게 평가해서 구체적인 자료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문화재구역입장료를 둘러싼 많은 논쟁들은 불교계와 협의 없이 수많은 사찰림을 국립공원지역으로 일방 지정한 정부의 무책임한 규제에서 문제가 출발되었다는 점은 간과하고 대개 입장료 징수위치와 금액의 문제로만 갑론을박을 지속하였다. 이는 정치적인 용어로 이미 프레임에서 종단의 명분이 밀리는 형국이 계속된 이유이다. 

따라서 종단에서는 첫째 국립공원에 소재한 사찰림은 사찰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둘째 국립공원 내의 탐방로는 사찰의 수행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별도의 탐방로를 개설할 것을 요구하며, 셋째 국립공원지역 중 공원문화유산지구는 사찰의 문화재와 사찰림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경관이라는 점에 대한 대국민 홍보활동을 통해 이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를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관련 공무원 및 정책입안자 그룹, 여론주도층 등에 대한 적극적인 접촉망의 확대를 통해 정책의 추진과정에서부터 종단의 여론이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는 협업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차제에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개별사찰이 아니라 종단이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지고 정부와 종합적이고 일관된 협상과 해결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천은사나 화엄사 교구 차원의 대응에서 매표소 위치가 천은사 소유부지가 아닌데 따른 정부와 시민단체의 매표소 위치이동 요구 및 이를 주요 쟁점으로 한 고법, 대법원 재판의 패소 등 불리한 법적판결의 결과에 대한 전문가적 접근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국민과 함께하고자 하는 대승적 입장에 따른 금번 협약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 인한 천은사 불법도로 개설의 책임 문제와 이로 인한 천은사 일원의 수행환경 훼손에 대한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는 부분은 한계점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돌아보면 이번 사안을 책임지고 해결한 당사자로서 변명일지 모르지만 이번 사안은 바둑으로 보면 불계패를 모면하기 위한 봉위수기(逢危須棄-위기를 만나면 과감히 돌을 버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때를 기다려야 함을 이르는 말)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일은 형세를 전환하는 근본적인 관점과 해결의 자세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벌써 다음 관람료 폐지사찰은 어디 어디가 될 것이라며 제2의 천은사에 대한 언론의 추측성 기사가 나오고 있다. 바둑에 환격(자기의 돌 한 개를 희생해서 잡히게 한 다음 다시 그 자리에 두어 상대방의 돌 여러 개를 잡는 일)이 있다. 오늘의 천은사 산문개방(문화재구역입장료 폐지)의 문제가 조계종의 환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종단은 좀 더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지금의 형국을 복기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바둑을 두고 있으며, 자신이 구상한 최선의 수로 판을 진행하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이나 조직의 바램이다. 최고의 수로 판을 준비한 사람도 일이 진행되다보면 만족하기 어려운 것인데 허겁지겁 상대의 수에 대응만 하다 보면 판을 읽기가 더욱 힘들어 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종단은 지금이라도 첫째 한시적인 TF팀의 구성이나 임기응변의 대응이 아닌 정부의 문화재 및 국립공원의 제반문제를 담당할 전문부서와 인력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 종단에서 운용하는 문화재관람료 17% 예산 부분도 목적사업에 부합한 내용으로 전면적인 확대예산을 편성하여 홍보물 제작과 배포 등 대국민 여론전에 나서야 한다.

셋째 정부의 졸속적인 공원정책과 불교문화의 몰이해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제시하며 대정부 협상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넷째 종단의 조직 구성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불교계 내 가장 많은 전문인력과 예산이 반영된 곳이라 하기에는 현재 종단의 생태계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가성비가 거의 없다고 할까. 1994년 개혁이 민주적인 조직질서의 편제라는 목적이 최우선이었다면 이제는 21세기의 초반 20년을 지나는 새로운 혁신의 시기라는 시대흐름에 조계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다섯째 종단 조직 구성원들의 전문성이 새롭게 제고(提高)되어야 한다. 안일함의 대명사인 공무원들도 요즘은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번 일들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각 부서의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들에 비해 종단의 구성원은 보직순환이라는 흐름 속에 별 다른 전문성이나 장기적 안목이 없어 종단소임자를 경험해 본 많은 공무원들이 구체적인 실무협의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곤 했다. 종단도 이제는 기획과 예산, 홍보 관련 전문 인력의 확보와 능력증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섯째 종단과 교구본사 및 개별사찰의 업무영역이 정리되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그 사찰만 정리하면 되겠지 하지만 세상일은 그것을 기화로 또 따른 분쟁의 씨앗이 생기게 되므로 문제의 해법이 전국적인 영역에 미칠 경우 개별본사의 대응보다는 종단 전체의 조율과 사업의 진행이 필요하다. 교구본사와 총무원은 이제 새로운 업무분장과 행정이양을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현해야 할 시점이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만 어려워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종단 주요 소임자로서 새롭게 출발한 집행부가 화합과 혁신을 모토로 열심히 정진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세간의 우려들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종도들의 좋은 의견을 수렴해서 최선의 결론과 실천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반상의 법도도 온전히 모르는 필자가 천은사 무료 산문개방에 즈음하여 바둑의 위기십결(圍期十訣)을 찬찬히 살펴본 이유일 것이다.

덕문스님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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