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안 갖춘 선견비구 우리 옆에 있다

선재는 십주(十住)선지식과의 만남을 통해 수행자의 가치관을 세우며 지혜와 자비행을 갖췄다. 이제 십행(十行)의 선지식들 찾아 남쪽으로 떠납니다. 선재는 그 길에서 보살의 행, 법, 처소가 깊고 깊음과 중생의 업과 행과 마음 등의 깊음을 13가지 방법으로 사유하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고민했다. 

믿음을 지니고 실행에 옮기는 행복한 마음자리, 그 첫 걸음인 환희행이 삼안국의 선견(善見)비구로 부터 시작된다. 그가 머무는 곳이 삼안국(三眼國)인 것은 여기서 중생을 위한 안목을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맑고 청정한 안목으로 법신을 항상 볼 수 있는 법안(法眼)과 중생의 근기를 파악할 수 있는 지안(智眼),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중생교화 방법을 선택하는 혜안(慧眼)을 갖추어야 한다.

재물보시로 집착을 여의는 혜안을 이루고, 정법의 법보시로 법안을 성취하고, 무외시로 항상 중생을 대하는 지혜의 안목인 지안을 이룰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중생의 입장에서 중생을 온전히 교화할 수 없으므로 중생의 안목을 버리고 부처님의 안목을 지녀야 한다. 부처님의 눈으로 중생을 봐야 일체중생이 부처임을 안다.

중생의 안목으로 보면 사람은 바뀌지 않지만 부처님의 안목으로는 사람이 다 부처로 바뀐다는 것이다. 보살수행자는 반드시 이 삼안을 지녀야만 흔들리지 않고 중생교화를 할 수 있다. 바로 환희행의 시작이며 선견비구는 그 모범사례인 것이다. 

선재는 이 선견비구를 처음 보는 순간, 부처님의 32상 80종호의 위대한 그 모습이 광명으로 빛나고 있어 저절로 귀의했다. 지혜는 넓어 큰 바다 같아서 여러 경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부처님이 행하시던 평등한 경계 속에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항상 교화하며 그들을 이익케 하려고 온갖 힘을 쓰고 있었다. 선재는 그런 스님의 모습과 행동 속에서 부처님을 뵙는 것 같아 환희로움에 합장하며 많은 천룡팔부 신중들이 앞 다투어 옹호하는 것을 보니 행복했다.

삽화=손정은

선재는 예를 올리며 보살행의 실천에 대하여 물었다. 선견비구는 “나는 젊어서 출가해 수행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과거 전생에 여러 부처님 처소에서 범행을 깨끗이 닦고 그동안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며 모든 서원을 장엄하고 증득할 곳에 들어가 모든 행을 닦다보니 자연히 6바라밀을 만족했다. 물론 부처님의 본원과 삼매의 원력으로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장엄하며 일체행 삼매에 들어간 힘으로 모든 보살행을 깨끗이 닦고 보현의 힘으로 모든 부처님들이 항상 바라밀을 청정케 하심을 알았단다”고 했다. 

말을 마치고 선견비구가 숲을 거닐자 기적과 같은 일들이 나타났다. 잠깐 동안에 모든 시방세계가 순식간에 나타났는데 이것은 선견의 지혜가 청정한 까닭이며, 잠깐 동안에 불가설 불가설전의 부처님 세계가 장엄되니 선견이 큰 서원을 성취한 까닭이며, 잠깐 동안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중생의 차별한 행이 나타나니 선견이 열 가지 지혜력을 성취한 까닭이며. 잠깐 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부처님들의 청정한 몸이 앞에 나타나니 이것은 선견이 보현보살의 행과 원을 다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선견은 중생들의 근성을 다 알게 되고 그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알게 되니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더욱 깊어져서 간절하게 공경하고 공양했다. 이것은 선견이 삼안을 갖추어 보현보살이 따라주는 등불의 해탈문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금강등 같아서 여래의 가문에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도록 몸은 건강하고 마음이 평온하며 나쁜 이들의 침해를 받지 않고 몸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온 세상에 널리 그 이름을 떨치며, 한 번만 그를 봐도 모든 장애가 사라지니 그를 만나 법문듣기를 소원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런 보시바라밀행의 해탈문의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는 것을 보며 선재는 존경하는 마음이 깊어 떠나기 싫었지만 명문국의 자재주동자를 소개하니 길을 떠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지금 나의 행복을 위해 재시와 법시, 무외시를 항상 가르치고 나를 경책하며 삼안을 지니신 분은 누구인가? 마음을 의지하고 이 험난한 세상을 견디며 지혜의 가르침을 전하는 선지식은 누구인가? 바로 여러분들이 오늘 만나게 될 대한민국의 청정한 스님들이다.

[불교신문3485호/2019년5월4일자]

원욱스님 공주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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