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부인의 예언이 바로 이것이구나”

“아도스님은 고구려에서 
한 여인을 만나고 그녀에게서 
아이를 낳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거든 그때가 
진정으로 출가할 때입니다”

아도의 눈가는 붉게 물들었다 
순도의 방 밖에 서 있던 
순령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날 밤, 순령은 기도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찾았다
합장한 두 손을 이마에 대고 있던 
순령은 눈을 번쩍 떴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것이로구나
유화 부인과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

순도와 마주 앉은 아도는 고구려에 오는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끝내 계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스승님의 뜻도 스승님이 하신 말씀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순도는 아도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스님께서는 짐작되는 바가 있으신지요?”

순도가 경전 하나를 내밀었다.

“<사십이장경>이 아닙니까?”

“읽어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가섭마등님과 축법란님이 한자로 번역한, 최초의 한문 경전이니 우리 같은 승려들에게는 필독서지요.”

“혹, 서품을 기억하십니까?”

“당연한 걸 물으십니다. 후한의 명제께서 어느 날 꿈에서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하늘을 날아 궁전에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도 신기하여 신하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인간의 모습이되 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신이 과연 누구일까 물었습니다.”

경전 이야기가 나오자 아도는 고민을 잊은 채 아이처럼 신이 났다.

“황제의 신하 중 해몽을 맞게 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네! 한 신하가 저 멀리 천축이라는 나라에 부처님이라는 성인이 계시온데, 아마도 그분이신 것 같다고 바른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황제께서 대월지국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얻어오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사십이장경>입니다.”

“역시 아도스님의 기억력은 대단하십니다.”

“그저 부처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혹시 찻잎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화로의 숯이 모자라지는 않은지 싶어 순도의 방 근처에서 서성이던 순령은 자신도 모르게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도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다. 한나라의 황제가 꾸었다는 꿈이 자신의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성문관 하늘 위로 황금빛 부처님이 계신 것 같아 순령은 허공을 향해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순도의 꿈

잠시 대화를 멈추고 차를 음미하던 순도가 입을 열었다. 

“<사십이장경>을 처음 읽었을 때, 제가 어떤 생각을 한 줄 아십니까?”

“순도스님이라면 아마도 부처님의 깊고 오묘한 가르침에 탄복하셨겠지요?”

“아닙니다.”

순도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후한의 황제가 부러웠습니다.”

“네?”

“비록 꿈이지만 부처님을 직접 뵌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는 저도 꿈에서 부처님을 한 번 뵙는 것이 소원이 되었답니다.”

생각지도 못한 순도의 고백에 아도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간절하면 통한다고 얼마 전 그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아도의 눈이 커졌다.

“진짜로 꿈에서 부처님을 뵈신 것입니까?”

“네, 정말로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위엄이 넘치는 거룩한 모습이셨습니다. 음성은 또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음성까지 들으신 것입니까? 음성은 어떠시던가요?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음성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아도스님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하하, 정말 재미있습니다. 스님.”

“스님은 고구려에서 한 여인을 만나고 그녀에게서 아이를 낳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거든 그때가 스님께서 진정으로 출가할 때입니다.”

순도의 얼굴에서도 아도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아까 성문관에 들어올 때 보신 여인 기억나십니까? 왕후의 시중을 드는 궁녀인데 이름은 순령이라고 합니다. 불심이 깊고 사방을 두루두루 헤아리는 마음 씀씀이가 아주 고와서 왕후께서 많이 아끼는 분입니다.”

순령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아도가 몸을 움찔했다. 

“그녀가 아도스님의 운명입니다. 아도스님과 함께 해동불교의 역사가 되실 분입니다.” 

이를 꽉 깨물고 입을 다문 아도와 달리 순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고구려에 오기 전, 스승님께서도 스님께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순령의 기도

아도는 멍한 얼굴로 도안대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의 뜻이 하늘에 닿았다. ‘아도’라는 이름은 고구려는 물론 저 아래의 신라까지 전해질 것이며 불교의 역사가 될 것이다. 고구려에 가거든, 그것이 무엇이든 너의 앞에 나타난 운명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거라.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할 것 없다. 망설일 것도 없다. 그것이 하늘이 너에게 내린 업이라면 선업으로 만들면 된다. 고구려에 가면 순령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녀가 너의 운명이다. 너는 그녀에게서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아이로 인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일어날 것이다.” 

고구려로 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스승의 말이 저절로 나왔다. 순도는 도안대사도 아도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면서도 감탄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부처님의 뜻입니다.”

“한 번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당신의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던 날, 출가하셨습니다.”

순도는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얼굴을 한 아도를 위로하며 말했다. 

“단계사에 있을 때 아도스님이 어떤 마음으로 출가를 했는지 이미 보았고, 스님이 경전을 연구하면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도 모두 보았습니다. 다 압니다. 제가 다 압니다.” 

순도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으나 아도의 눈가는 붉게 물들었다. 순도의 방 밖에 서 있던 순령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우연히 엿듣게 된 이야기는 엄청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아비 없는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유화 부인의 예언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순령은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오늘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내불당에 가서 향을 맡으며 기도를 해야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내불당으로 달려간 순령은 눈물이며 땀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닦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불당에 배어있는 은은한 향이 번잡했던 머릿속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순령은 불당에 앉아 유화 부인이 오셨던 지난 꿈들을 더듬어 보았다. 순도스님이 고구려에 처음 오셨을 때, 왕과 왕후께서 순도스님의 시중을 들으라고 하셨을 때, 순령은 순도스님이 예언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순령이 생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순도스님이 오신 뒤 오히려 그녀의 삶은 더욱 평온해졌고, 고구려는 활기찬 변화를 맞이했다. 그래서 유화 부인의 예언을 잠시 잊고 있었다.

“부처님, 진정 순도스님의 꿈에 오셨나요? 유화부인께서 제 꿈이 오셨던 것처럼?”

순령은 대답 없는 불상을 올려보며 물었다. 매일 보던 불상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날 밤, 순령은 기도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찾았다. 합장한 두 손을 이마에 대고 있던 순령은 눈을 번쩍 떴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것이로구나. 유화 부인과 부처님께서 내가 몸과 마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신 것이로구나.”

[불교신문3484호/2019년5월1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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