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스님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탑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63호로 지정됐지만 불행히도 1984년 4월 화재로 소실되고 만다. 쌍봉사 대웅전은 1986년 12월 복구되지만, 보물 지위는 화재 연기와 함께 상실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숭례문은 2008년 2월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안타까움 속에서 잿더미로 변했다. 그 뒤 2013년 5월 복구됐다. 그런데 숭례문은 계속 국보 1호라는 영예를 안고 간다. 

똑같이 화재로 소실돼 복구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문화재 지위는 다르게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를 지정하는데 뭔가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때로는 주관적 판단이나, 문화권에 따른 특징적 관점이 결부되는 측면도 여럿 존재한다. 

동아시아 수묵화가 서양 경매 시장에 등장했을 때, 서양 미술사가들은 유화와 다른 부분 때문에 고민했다. 유화는 빈 곳 없이 모든 곳에 물감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가의 의도를 투영한다. 

그런데 수묵화는 흰색의 화선지 일부에만 먹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전통에는 ‘여백의 미’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 여백이란, 단순한 바탕이 아니라 작품을 살려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투영된 공간이다. 이를 도가나 현학(玄學)에서는 ‘존재의 유용함이 가능하게 하는 허(虛)’라고 한다. 이 같은 동양의 특수한 미적 판단이 서구인에게 인식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이다. 

이런 논란은 건축에도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처럼, 석재 건축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부재들이 건축 당시의 원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목조건축은 상황이 다르다. 목조건축의 특성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부재들이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부석사 무량수전을 생각해보자. 과연 이 안에 창건 당시 고려 시대 목재들은 얼마나 존재할까? 

기와는 보통 30년을 주기로 바꿔야 하며, 기둥이나 서까래도 500년 이상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즉 무량수전은 고려 말에 조성된 것일 뿐, 현재 이를 구성하는 건축자재 상당수는 고려가 아닌 조선의 것인 셈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연대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오늘날에는 건축 재료에 따른 특수성이라는 점에 서구인들도 동의한다. 

정선에 위치한 정암사 수마노탑은 탄산염암의 일종인 톨로마이트와 석회암을 벽돌처럼 재단해서 쌓은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은 석탑에 비해 견고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벽돌처럼 연결된 틈에 물이 들어가면 균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선처럼 눈이 많고 추운 기후에서는 돌도 온도 차에 의해 균열이 발생하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레고블록처럼 쌓은 탑은 해체 수리가 용이하다. 이렇게 수마노탑은 500년을 넘게 흘러온 것이다. 

최근 수년간 정선군과 정암사는 수마노탑의 국보지정을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수마노탑의 보수와 개변 문제가 발목을 잡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모전석탑의 특수성을 간과한 판단일 수 있다는 점에서 못내 아쉽다. 특수를 특수로 인정하는 것 역시 문화재에 대한 정당한 안목이라는 점이 요청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불교신문3483호/2019년4월27일자]

자현스님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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