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누구 이기고 가르치려는 목적 아님
논거 들어 주장하는 바 설득력 있게 제시
상대방 주장 경청하며 논거 들어 반박해야
그 과정 겸허한 자세, 수용 배려 존중 시간
우리는 과연 제대로 토론하는가 성찰 필요

지난 3월11~12일 양일간 제11대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회는 ‘전국비구니회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를 가지고 경주 황룡원에서 워크숍을 개최했다. 김봉석 변호사가 발제한 ‘종법상 비구니의 지위와 역할’ 김중태 lT문화원장의 ‘SNS와 인스타로 소통하기’에 관한 유익한 강의도 들었다. 

그 날 토론은 사전에 토론자와 주제를 정하지 않고 즉석에서 번호표를 뽑아 난상토론(爛商討論)으로 진행됐다. 사전에 기획하지 않다보니 토론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평소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렇게 해서 나온 내용들은 종합 토론을 통해 다시 거르고 정제하여 우리 종단과 비구니회에 꼭 필요한 의제가 간추려졌다.

팀 토론 결과 정리된 주제는 전국비구니회의 운영체제 개선 방안, 비구니 노스님들의 노후복지, 출가자 감소에 따른 비구니회 역할, 수익모델 개발, 재정확보 방안 등이었다. 모두 종단과 한국불교를 위해 꼭 필요하면서도 함께 고민할 주제였다. 각 팀마다 주제와 내용이 다양해 문제제시에 머물지 않고 해결 방안까지 나왔다. 참석한 모든 스님들이 평소에 느낀 것들을 풀어내고 함께 공유하는 유익하고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대화나 토론하는 일에 서툴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거나 토론을 통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묵살하려 들거나 어른에게 대드는 식으로 받아 들이기도 한다. 모두 잘못된 토론 태도다. 어른이나 선배의 자유롭고 공정하지 못한 토론 태도는 자칫 침묵이나 거짓된 말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부작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뒷담화를 낳게 하여 전체가 손해를 입는 결과로 이어진다. 소신껏 말하지 못하고 주변 눈치를 보거나,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잡지 못하고 장광설을 늘어놓는가하면 중심을 못 잡고 부화뇌동 우왕좌왕하는 대중이 있다면 그 조직의 토론 문화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날 한 후배 스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님은 경상도 억양에 말 할 때 끊고 맺는 부분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로 하여금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 생각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말을 끊어 버립니다”라고 했다. 뒤돌아보았다.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후배 스님의 조언처럼 성급하고 품위 없는 말투로 내 뜻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 듣기 보다 결과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랫동안 리더로 지시하던 습관과 명령조 어투가 몸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토론은 누구를 이기기 위해, 혹은 남을 가르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토론은 특정한 논제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대립하는 각자가, 서로의 주장하는 바를 설득력 있는 논거를 들어 나의 정당함을 내세우고 상대방의 주장과 논거를 반박하고 증명해 가는 화법이다. 그 과정은 자신이 아는 만큼 내려놓고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배려와 존중의 시간이 되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주장의 정당성을 관철하는데 집중하고 상대방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거나 존중하는 자세를 놓친다면 토론의 기본을 어긴 셈이다. 

17세기 프랑스 사상가인 볼테르가 남긴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라는 유명한 말처럼 멋진 토론 문화 정착을 위해 나부터 바꾸어 가야겠다. 

[불교신문3482호/2019년4월24일자]

정운스님 논설위원·보령 세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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