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온다. 가끔 만나자고, 나오라고, 얼굴 한 번 보자고. 참석하라고, 참석해 달라고. 

이런저런 일로 연락이 오면 즉시 응답할 때도 있고 나중에 내가 연락하겠다면서 회답을 미루기도 한다. 가겠다고 말하고서도 정해진 날이 다가오면 못가겠다고 말할 때도 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못 가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가지 않는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나에게 거절하기가 어려운, 아니 거절 못할 말로 만나자는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그 말에는 나는 꼼짝 못한다. 그 말이란 바로 ‘우리, 앞으로 몇 번 더 만나겠냐’다. 50년도 더 넘은 도반(道伴)이 하는 이 말에는 난 거절할 어떤 말도 찾지 못하게 된다. 게을러서 나들이를 좀체 잘 안하는 내겐 이 말처럼 무섭고 정겨운 말이 없다. 이 말을 들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숱한 세월이었지. 우리가 만나서 보낸 날들이. 그래, 살아 온 날보다 이제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 않은가. 몇 해 전 만 해도 이 말이 갖는 무게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자꾸만 곱씹히는 이 말. 우리 몇 번 더 만나겠냐. 살면서 별 일도 없이 그저 가벼운 만남을 갖곤 했다. 얼굴을 보고 서로의 건강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애기를 하고. 그러고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지곤 했었다. 그러던 만남이 이젠 무겁게 느껴지곤 한다. 세월의 힘이 실려 그런가 보다. 지난 세월보다 앞날이 가져올 무게감에 생각이 더 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쯤이 되면 지난날을 돌아보며 앞날을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진다. 이젠 ‘쇠털같이 많은 날’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쇠털같이 많은 날이라고 했을 때는 기운도 정력도 궁리도 많을 때였다. 근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다. 만나자는 말을 이렇게 하는 그 도반의 생각에 내 생각이 겹쳐진다. 

그래, 우리가 몇 번 더 만나겠냐.

[불교신문3480호/2019년4월17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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