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캄보디아 현장에 있다 보니 후원자분들과 대화할 공간도 시간도 없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활동가 편지’를 통해 이곳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지만, 사실 저에게는 점점 대답 없는 넋두리 공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궁금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대체 어떤 사연을 가진 분이,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도움을 주기 위해 큰 정성을 저희에게 선뜻 건네는 걸까요?

이 소통의 빈곤에서 벗어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명판(銘板)입니다. 명판에는 건립연도, 관리번호 등 주요사항을 넣기도 하지만 기부한 분의 뜻에 따라 이름(名)을 넣기도 하고 희망차고 밝은(明) 문구를 넣기도 하고 돌아가신 분의 명(冥)복을 빌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저에게는 이 명판이 이름을 알려주는 명판(名板)이자, 밝은 희망을 보여주는 명판(明板)이자, 돌아가신 분의 뜻을 기리는 명판(冥板)입니다. 이런 명판을 보면서 뵌 적은 없지만 큰 도움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명판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도움을 주셨을까 어렴풋이 짐작 해봅니다.

우물 건립을 알리는 명판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각자의 사연이 담긴 명판을 보면서 후원자들의 마음과 추억 그리고 사연을 지키기 위해 올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좋은 곳에서 살기를 … 엄마가…’ 라는 명판과 함께 2018년 신규우물을 건립했습니다. 저는 이 분과 연락을 하지도, 뵙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건립을 하고 명판을 붙이며 사후관리를 하러 가는 동안 이 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빌고 믿습니다. 분명히 좋은 곳에서 행복하실 것이라고.

이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명판에서 후원하신 분들의 기쁨 염원 축하 등의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정웅석 첫돌기념’, ‘고유현 첫돌기념’, 이현 첫돌기념’, ‘당신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모든 사람이 건강하기를’, ‘모두 꼭 행복하세요!’, ‘이태경 기장 자격증 취득기념’ 등. 많은 분들이 명판을 통해 많은 이야깃거리를 전달해 주십니다. 그래서 명판을 보고 있는 것이 지겹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우물 명판에는 후원자분들의 사연이 들어있고 저를 포함한 이곳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쌓여갑니다. 그래서 모든 우물이 저마다의 사연을 갖게 됩니다. 후원자 분들의 마음과 추억과 사연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쌓여가는 것을 지키기 위해 올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불교신문3480호/2019년4월17일자]

김민호 지구촌공생회 캄보디아지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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