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관행의 문제…“남녀평등 교리 맞게 불평등 현실 개선” 목소리

“팔경계법, 변성성불론 등은
부처님 가르침과 맞지 않아

남녀문제 아닌 깨달음 지향
수행 도반으로 바라 보아야“

불교 교리나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남녀 차별은 없다. 비구 비구니 구분도 없다. 불교는 성별 인종 계급 등 외적 조건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이는 불교가 출신 성분이나 조건이 아닌 그 행위에 따라 과보를 받는 개인의 주체성을 지지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숫타니파타는 “태어나는 것에 의해 바라문인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것에 의해 바라문이 아닌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되고,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거나 “출생을 묻지 말라, 행위를 물어라”며 결정론을 거부하고 주체적 행위를 지지한다.

“출생을 묻지 말라”는 교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여성 차별을 당연시 하는 교설이 지배한 것도 사실이다. 비구니를 차별하는 가장 대표적 조항이 비구니 팔경계법이다. 팔경계법은 교단에서 비구니스님 차별의 근거로 작용해왔다. 비구니팔경계법은 최초의 비구니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를 교단에 받아들이는 조건이었다. 불교 교리와 위배되는 이 계법을 부처님께서 비구니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제시한 까닭은 당시 사회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왜냐하면 불성에 차별이 없다는 불교 핵심 교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고타미의 청을 세 번 거절할 정도로 여성 출가를 받으려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난이 “만일 여성도 출가하여 수행하면 최후에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여쭙고 부처님은 “누구든지 여래의 가르침에 따르면 깨달음의 지위에 오를 수가 있느니라”고 답한다. 아난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삼아 정중하게 요청한다. 부처님은 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단서를 단다. 바로 비구니팔경계다. “비구니는 설령 자신보다 후에 출가한 비구라 할지라도 그를 공경해야한다”는 첫 번째 조항이 대표적인 문제 조항으로 거론돼 왔다. 지금은 사문화됐지만 오랫동안 한국에서 위세를 떨쳤다.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장소에서 안거를 해서는 안된다’, ‘비구 승단에서 계율을 반성하는 포살을 하고 설교를 들어야한다’는 조항은 비구니 스님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 해도 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꾸짖거나 욕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은 남성 우위의 불평등 율이다. 여섯째 조항 ‘비구니의 견습은 2년 동안 일정한 수행을 거친 다음 온전한 비구니가 되는 의식을 받아야한다’는 조항은 식차마나니계로 살아있다.

또 하나 비구니스님과 여성을 차별하는 교리는 <법화경>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은 남성으로 성을 바꾸어서 성불한다는 ‘변성성불설’이다. 이 역시 불교 교리와 전혀 맞지 않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보살사상과 여래장으로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고 보살이 수행을 쌓아 성불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법화경>의 ‘제바달다품’에 나오는 용녀의 변성남자성불론은 불교의 교리에 어긋난다. 물론 대승 초기 경전에만 잠깐 나타나지만 이 역시 지금 까지 한국불교 승단에서 맹위를 떨쳤다. 

여성 불평등 교설로 여인의 몸은 성불을 하기에 5가지 장애가 있다는 ‘여인오장설’과 비구니를 교단에 받아들임으로 인해 천년을 갈 정법이 5백년 밖에 못 간다는 ‘정법 5백년 감소설’도 흔히 인용된다. 이 역시 재가자도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이나 결정론을 배격하는 불교 교리에 비춰보면 맞지 않는 교설이다. 이처럼 여성을 비하하는 교리는 부처님 당대가 아닌 후대에 삽입한, 남성 우월적 사고의 반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불교는 남녀를 평등한 존재로 본다. 불교 교리에 맞게 제도 의식 문화를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종단 비구니스님들의 본산 역할을 하는 전국비구니회관 전경.

여성 불평등 교설 후대 삽입설

이창숙 불교여성개발원 자문위원은 지난 2012년 6월 <불교평론> 주최 열린 논단에서 “변성남자성불설은 그 사회와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설정한 타협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부처님의 팔경계나 변성성불론 등과 같은 교리와 맞지 않은 교설이 여성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와의 어쩔 수 없는 타협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이를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법인스님(전 교육부장)은 지난 2004년 불교평론(18호)에 기고한 ‘비구니 팔경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글에서 “팔경법이 제정될 당시에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여성 출가의 절대적인 조건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치안은 안전하게 보장되어 있고, 주거환경도 좋으며, 비구니의 교육과 수행의 수준도 월등하고, 많은 비구니 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에 팔경법은 이미 그럴 만한 원인과 조건이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며 “여인오장설, 정법 감소설, 여인 불성불설(不成佛說), 팔경법 등 갈등과 반목의 원인이 되는 법과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차별 교설은 불교의 전반적 교리와 사상에 비춰보면 단편적이며 시기도 일시적이다. 교단의 역사나 문헌은 차별 없고 평등한 불성관이 주류다. 부처님 당시 여성 출가자 현황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타미가 최초 출가를 간청하고 받아들여지기 까지 2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이후는 다양한 출신의 여성이 출가하고 이들은 부처님으로부터 비구와 아무런 차별 없이 설법을 듣고 아라한을 성취했다. 

<장로니게>에 등장하는 92인의 장로니는 왕가 또는 귀족가문, 큰 부호나 브라만 가문 외에도 기녀도 4명이나 포함됐다. 최초의 비구니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는 어머니를 대신해 키워준 부처님의 이모였고 비구니 중에 지혜 제일로 존경받는 케마는 마가다국 빔비사라 왕의 왕비였다. 부처님께 동산을 보수했던 암바팔리는 유명한 기생이었다. 창녀나 수행자를 사랑한 여인도 있었다.

부처님은 비구니들에게 교설과 실천수행법을 비구들과 차별하지 않고 설하셨으며 비구니들은 교법을 듣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증득하고 고통을 완전히 소멸시켰음을 말하고 있다. 법인스님은 불교 평론에 실은 같은 글에서 “이는 법의 정신에 입각한 법의 평등이며,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실현될 수 있음을 개개인의 증험과 비구니 승가의 역사로서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기조는 대승경전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가령 승만경은 설법의 주체가 불타가 아닌 재가의 결혼한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 여주인공의 설법을 사자후라고 하여 부처의 지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창숙 위원은 위 논단에서 “승만경은 불교 경전 가운데 여성의 위치를 가장 확실하게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경전이며 승만 부인은 가장 이상적인 불교의 여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 출가자도 차별 하지 않아

그러나 우리 종단 현실은 여전히 ‘변성성불론’ ‘비구니 팔경계’등의 여성 차별적 교설이 위력을 발휘한다. 한 사미니 승가대학의 스님은 “80세가 넘은 이 비구니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그동안 모았던 모든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생에는 오직 남자로 태어나 성불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서원이다’라고 토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여자의 몸으로는 아무리 수행을 하여도 성불할 수 없고 다음 생에서 남자의 몸을 타고나야 가능하다는 것이 불교의 전래된 관념이기 때문이라 하였다.”며 안타까워하는 글을 승가대학 교지에 실었다. 

더 큰 장벽은 교단의 의식 풍토와 관행이다. 비구니스님들을 차별하는 종단의 제도가 의식을 더 공고히 한다. 그리하여 비구니스님들의 일상 생활과 수행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비구니스님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비구니스님들이 수행할 사찰의 부족이다.

지난해 5월 본지 논설위원인 자우스님(비로자나국제선원)이 쓴 짧은 글 한편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눈물 짓게 했다. 몸이 아파 서울 병원에 왔는데 몸을 쉴 방사가 없어 여관을 전전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스님이 본지에 쓴 글 중 일부다.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예순을 넘긴 듯 했다. 공부하고 포교하는 스님들을 위한 ‘나란다수행관’ 기사를 보고 전화했다고 한다. 몸이 많이 좋지 않아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 전, 후로 있을 곳이 없다고 한다. 거처할 사찰을 찾지 못해 여관에 가려던 참에 나란다수행관 기사를 보고 전화한 것이다. 수행관에 머물 수 있느냐고 묻는데 난감했다. 나란다수행관에는 방이 6개뿐이다. 5개는 석. 박사 과정과 포교하는 스님이 쓴다. 작고 창문이 없는 방은 서울에 잠깐 다녀가시는 지방 스님들을 위한 객실이다. 창문도 없는 객실 또한 인기가 좋아 늘 스님들로 붐빈다.” 

스님은 “모든 것 내려 놓고 부처님만 바라보고 출가했지만 아프면 갈 곳이 없는 것이 우리 승가의 현실이다. 출가자가 줄어들었다며 종단이 나서 출가수행 장려운동을 펼치는데, 이미 출가한 스님들이라도 잘 보살폈으면 좋겠다”고 글을 맺었다. 이 글이 나간 뒤 여러 곳에서 후원도 들어왔지만 노 비구 스님은 불편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 당황했다고 한다.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비구니가 종단의 아픈 현실을 드러낸데 대한 불편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비구니 스님 수행 사찰 부족

비구니 스님들은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구족계를 받으면 선원 외에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대학원 진학, 사중 종무 등으로 절에 남는 일부 스님을 빼면 선원 외에 딱히 갈 곳이 없다. 비구니 스님들에게 할당된 공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구 스님들도 갈 사찰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비구니 스님들은 지방의 작고 열악한 사찰을 찾아 새로 일군다. 과거 비구니 스님이 어렵게 일군 사찰을 빼앗는 비구스님들이 있어 종단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를 피해 선학원에 등록하는 스님들이 많았다. 종단 비구니 스님들이 만든 보문종에 등록한 스님들도 있었다. 

공찰이 많지 않은데 기껏 일군 사찰을 완력에 밀려 쫓겨나는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과거 비구니 스님들은 겪었다. 경주 논산 등지에 아파트 형으로 지은 비구니스님들의 거주지가 많은 것도 사찰이 부족한 이유 때문이다. 산철 걸망을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거나 아픈 경우 의탁할 곳이 없는 스님들이 협력하여 많은 스님들이 거주할 수 있는 독립된 거주지를 만든 것이다. 

몸이 아픈 경우는 더 난감해진다. 십 수 년 전에는 중병에 걸려 의지할 곳도 간호 받을 곳도 없는 비구니 스님이 선원에서 나온 비구 수좌의 간병을 받아야하는 사연이 보도된 적도 있었다. 전국의 교구가 노스님을 위한 수행관을 건립하는 노후 복지가 많이 이뤄지지만 이 역시 대부분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여성 출가자 감소 원인 작용

여기에다 한국 남성들이 갖고 있는 남성 우월적 가부장적 유교문화도 비구니스님들에 대한 차별을 공고하게 한다. 이러한 남성 우월적 의식은 최근 비구니스님들의 활발한 활동이나 당찬 모습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성 출가자 수가 남성 출가자 보다 훨씬 빠르게 줄어드는 이면에는 이러한 현실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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