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함축하는 단 하나의 경전을 꼽으라면 어떤 경을 택해야 할까? 타종교는 성서가 한두권으로 엮어져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팔만대장경으로 집대성되어 마치 바다와 같다. 그렇다면 바닷물을 모두 마시지 않아도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팔만대장경을 모두 섭렵하지 않아도 불교의 맛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경전은 없을까? 

<천수경>은 관음신앙에 국한되어 있으며, <금강경>은 아상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능엄경>은 선정을 닦는 마음가짐과 방법에 집중하고 있고, <법화경>은 중생구제의 대승사상에 몰두하고 있으며, <화엄경>은 지나치게 방대하고 어렵다.

이에 반해 <유마경>에는 초기불교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리불과, 대승불교의 지혜제일 문수보살, 그리고 선불교의 선양자인 유마장자가 골고루 등장한다. 그래서 각각 무아설과 공사상, 그리고 묘유(妙有)에 대하여 설하며, 이 세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컨대 번뇌를 끊고자 선정에 들어있는 사리불에게 유마거사는 “그렇게 앉아있지만 말고 멸진정에 들어있는 그대로 행·주·좌·와를 내보이는 좌선을 행하며,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드는 좌선을 행하라”고 말한다. 또한 마왕 파순에게서 천녀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지세보살을 대신하여 여인들을 흔쾌히 받아 들여 무진등 법문으로 가치관을 완전히 전환시킨다. 심지어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여인들에게 도리어 마왕의 처소로 돌아가 그곳의 천신과 천녀들에게 보리심을 품도록 이끌어주라 권유한다.

나아가 ‘어떠한 것도 논하지 않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불이법문(不二法問)’이라고 설하는 문수보살에게 유마거사는 ‘문자도 없고, 말도 없고, 마음의 움직임도 없는’ 위대한 침묵으로써 답변하고 있다. 이러한 침묵은 선사들에게서 잠시 말없이 침묵하는 양구(良久)로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유마경>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시끌벅적한 중생계야말로 보살의 불국토이며, 모든 것은 다만 아바타일 뿐이니 바로 지금 여기에서 애착없이 열심히 전법하며 살라는 가르침을 포괄적으로 전해주는 단 하나의 불경인 것이다.

[불교신문3479호/2019년4월13일자]

월호스님 논설위원·행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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