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13> 정정진(正精進)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13> 정정진(正精進)
  • 등현스님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 승인 2019.04.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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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탐욕과 분노 정화하는 길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 고통
브레이크 고장난 기차처럼
만족 모르고 더 집착하게 돼

인간의 마음은 지정의 3가지 정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수행은 지정의 3요소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견 정사 등을 통해 지적인 업을 다스리고, 정어 정업 정명 등을 통해 의지적인 업을, 선정행을 통해 감성적인 업을 다스리게 된다. 감성적 번뇌는 잠재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다. 이들 감성의 결과가 마음에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대상에 대한 탐착과 화남의 상태이다(貪瞋). 싫어하는 감정에 충실하면 기가 빠져 무기력해지고(혼침), 좋아하는 감정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고(들뜸), 혼란에 빠지게 된다(의심). 이 다섯 가지 감정의 번뇌(五障)를 다스리는 것을 선정행이라고 하고 정정진이 시작이다. 인간의 기억 속에 있는 탐욕과 분노를 정화하는 것이 바로 정정진인 것이다. 

첫째로 마음이 6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받아들인 정보가 좋아하고 싫어함(貪瞋)에 물들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을 감각기관의 제어(律儀勤)라 한다. 좋아하고 싫어함은 모두 고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감정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 싫어하는 마음이 고통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일단 싫은 생각은 싫은 감정을 일으키게 하고, 싫은 감정은 표현해도 괴롭고 억눌러도 괴롭기 때문이다. 싫은 감정은 표현하면 자타가 상처를 입고, 억누른 감정은 은밀한 방법으로 부도덕하게 표현되어지게 된다. 그러나 좋아하는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보다 실제로는 더 큰 고통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간과한다. 한번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를 타는 것과 같다. 좋은 것은 갖고 싶고, 갖지 못하면 괴로움이 된다. 만일 갖게 되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대상을 더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면 그 대상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엄청난 고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욱 더 무서운 것은 좋아하는 느낌을 위해 평생 종노릇하며 충족시켜줘도 만족을 모르고 더 큰 욕심을 낸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감정은 싫어하는 환경을 끌어당긴다. 일반적으로 배려심이 많은 사람은 이기심이 많은 사람을 싫어하고, 검소한 사람은 낭비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자유분방한 사람은 강요를 싫어하고, 아름다움을 좋아하면 못생긴 모습을 싫어한다. 문제는 이 싫어하는 감정들이 그 대상을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감정은 자석과 같은 성질을 가졌으나 눈이 없다. 좋건 싫건 감정이 한번 발생하면 그 대상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것이 싫어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에게 싫어하는 환경이 늘 발생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마음의 법칙이고 이것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시비를 고집하는 한, 좋지 않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의 모든 생각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느낌(受)과 연관되어 있어서 6근을 통해서 받아들인 정보는 자연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이고 나에게 이로운 것은 좋아하고 해로운 것은 싫어하게 된다(想). 좋다고 생각하면 가까이 하고 싶은 욕망, 싫다고 생각하면 멀리하고 싶은 욕망이 발생한다(行). 그 욕망들이 업이고 나의 현실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에 있는 선험된 심리적 업을 정화하기 전에 감각기관의 정보를 먼저 제어하고 단속해야만 한다. 

둘째는 이미 발생한 감정의 번뇌들을 없애는 것이다(단근, 斷勤). 업을 다스려서 해탈을 성취하는 것을 천년 묵은 우물을 청소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일단 더러운 오염물이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붕을 세워서 차단한 후,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마음의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 5가지의 마음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을 단근이라 한다. 

셋째, 이들 불선법은 정념을 위시한 7가지 깨달음의 구성 요소(七覺支)라는 선법을 증장시킴으로써 다스릴 수가 있다(修勤). 그것은 바로 념각지, 택법각지, 노력각지, 희각지, 평온각지, 삼매각지, 평등각지이다. 넷째, 그러한 연후에 다시 마음이 오염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부정관을 하는 것을 수호근(守護勤)이라 한다. 

[불교신문3479호/2019년4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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