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라! 주리반특이여! 자신이 어리석은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니라. 참으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 중에서

밭 어귀에 봄볕 먹은 쑥이 올라올 때 쯤이었다. 머위도 잼잼이 애기 손바닥만하게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종균을 넣어 아무렇게나 세워놓은 참나무에선 표고가 어릴 적 훌쩍거리던 콧방울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날이 따뜻하여 봄도 일찍 찾아오겠기에 묘목시장에 들러 수국 모종을 열 주 사다 언덕배기에 심었다. 그런데 꽃샘추위에 된서리 내리더니 밤새 세숫대야 물이 얼고, 밀어올린 지 얼마 안 된 새잎이 시들하더니 말라버렸다. 낮볕을 틈타 물을 주었으나 상한 마음 되돌릴 길 없듯이 수국 잎은 끝내 돌아오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뽑아버릴까 생각하다 뿌리는 살아있으리라 여기며 다시 새순을 틔울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게 봄을 시샘한 독한 영하의 기온에 대한 귀여운 복수가 될 것 같았다. 믿음을 포기하면 그 무엇도 아닌 내 자신에게 먼저 지는 것이리라. 설령 영영 아니 살아날 모종일지언정 모두가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 보듬은 부처님 정성의 흉내쯤은 있어야 했다. 

[불교신문3478호/2019년4월10일자] 

도정스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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