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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4> 아버지 없는 아이가 태어나다“황제께서는 불교의 어떤 면을 그토록 숭앙하시는지…”
  •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 승인 2019.04.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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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에 대한 대답이 막힘없이 
이어질 때마다 왕의 눈은
깊어졌고 왕비의 눈은 빛났다 

왕비 시중을 드는 젊은 궁녀도 
졸리거나 피곤한 기색 없이 
순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놀랍습니다. 부처님도, 
부처님의 가르침도 놀랍습니다 
또 다른 세상이 
눈앞에 열린 기분입니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오늘은 
잠을 못 이룰 것 같습니다”

“순녕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갑작스러운 왕후의 질문에 
순령은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그녀는 순도스님이 했던 …

금으로 만든 조각상

진나라의 사신단이 국내성에 도착했다. 소수림왕은 몸소 대전에서 그들을 직접 맞았다. 왕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는 비단옷을 입고 황제의 칙서를 들고 온 대신이 아니었다. 사신단의 맨 앞에선 순도였다. 삭발한 머리에 수수한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순도는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온 경전과 불상을 왕에게 올렸다. 

“황제께서 고구려에 전하라 명하신 것이옵니다.”

왕은 순도가 올린 경전과 불상을 받았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책과 크지 않은, 금으로 된 조각상 하나였다. 

‘금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이 조각의 의미는 무엇인가?’

앉아있는 남자를 묘사한 조각은 자못 섬세했고 옷자락의 펄럭임은 정교했다.

‘진나라 공예가들의 솜씨가 대단하구나. 금을 몸에 지니는 장신구가 아니라 조각에 이용한 것도 놀랍다. 금으로 빚은 것을 보면 귀한 것일 텐데 황제는 무엇을 전하고자 한 것인가?’ 감탄과 의문을 삼키며 왕이 순도에게 물었다. 

“이 조각상은 누구를 만든 것인지 궁금하오. 황제의 복장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인지 몰라 예를 갖추지 못했으니 양해하시오.”

순도는 대답에 앞서 왕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행여 책잡힐 만한 말과 행동은 하나도 없었다. 근엄한 자태를 지닌 고구려의 왕은 과연 보통이 아니었다.

“이 조각상은 황제가 아니라 부처님의 모습을 만든 것으로 ‘불상’이라고 부릅니다. 황제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깊이 감화되셨고, 고구려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여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황제께서는 불법(佛法)에 귀의하셨기 때문에 불상에도 예를 갖춰 올리십니다. 왕께서는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심에도 참으로 헤아리는 마음이 깊어 빈승은 크게 감복하였사옵니다.”

순도의 설명을 들으며 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이야기를 들으니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더욱 궁금해지는구려. 그것은 차차 알아가도록 합시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불상과 경전 그리고 스님 

왕과의 공식 알현이 끝난 뒤 사신단은 성문관에 짐을 풀었다. 국내성 동문 밖에 자리한 성문관은 본래부터 중국과 고구려를 오고 가는 사신들을 위한 거처였다. 그만큼 문화교류의 중심이기도 했고 왕궁과도 가까웠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드나들기에 좋았다. 건물은 휘황찬란하거나 크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공간들은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성문관을 찬찬히 한 바퀴 돌아본 순도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절이 있으면 참으로 좋을 곳이로다.’

은밀하게 활동하는 승려들은 있다고 들었으나 고구려에는 아직 사찰이 없었다. 순도는 성문관이야말로 사찰이 들어서기에 좋은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저녁이 되자 사신들을 위해 거나하게 음식이 차려졌다. 사신들은 고구려가 자랑하는 술을 마실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성문관에서 맛본 술맛을 잊지 못해 사신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고구려의 술은 진나라 대신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순도는 식사 시간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왕후가 보낸 시종이 순도를 찾아왔다.

“왕비님께서 스님께 저녁 공양을 올리고 싶다며 저를 보내셨습니다. 긴히 여쭤보실 말씀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순도는 잠시 고민했다. 고구려에 온 첫날이었다. 늦은 저녁, 궁으로 들어가 왕비가 대접하는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오해를 일으킬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 사신으로 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고구려에서는 원래 이런 문화가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른 일행들은 이미 한참 먹고 마시며 흥이 올라 있어 물어보러 가기도 민망했다. 그렇다고 왕비의 시종을 계속 세워두는 것도 없는 일이었다. 고민하는 순도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시종은 속삭이듯 덧붙였다.

“긴히 여쭤보실 말씀이 있다고 하신 분은 왕비님이 아니라 왕이십니다. 두 분께서는 지금 함께 스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복잡했던 순도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어서 가시지요.”

궁금한 것

왕후전에 도착하자 시종이 말한 것처럼 왕과 왕후가 나란히 앉아 순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비의 옆에는 궁녀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차린다고 차렸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긴장한 얼굴의 왕비가 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 위에는 간장으로 양념을 입혀 구운 고기며 독하고 향기로운 술병 대신 따뜻한 국과 하얀 쌀밥 그리고 떡과 과일 등이 놓여 있었다. 

“도인(道人)들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덕분에 무엇으로 상을 채워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써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순도는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국이 일품이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맛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도가 식사를 마치자 상이 나가고 다시 찻상이 놓였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자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왕이 입을 열었다.

“굳이 오늘, 궁으로 두 번이나 걸음을 하시게 한 이유는 궁금한 것이 있어서입니다.”

“말씀하십시오.”

“고구려에 도인(道人)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황제께서는 불교의 어떤 면을 그토록 숭앙하시는지 알려준 분을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순도스님께서는 제 의문에 답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모셨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바로 물어봐 주시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날 밤, 순도는 왕과 왕후와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음에 대한 대답이 막힘없이 이어질 때마다 왕의 눈은 종종 깊어졌고 왕비의 눈은 빛났다. 왕비의 시중을 드는 젊은 궁녀도 졸리거나 피곤한 기색 없이 순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놀랍습니다. 부처님도, 부처님의 가르침도 정말 놀랍습니다. 또 다른 세상이 눈앞에 열린 기분입니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오늘은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왕께서 궁금하신 것이 있다면 내일도 또 다음날도 언제든 답을 하러 올 것입니다.”

“많이 피곤하실 텐데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봅니다.”

순도가 일어나자 왕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왕과 왕비는 나란히 서서 성문관으로 돌아가는 순도를 배웅했다.

세 사람의 마음 

“그저 몇 가지 물어보려고 했을 뿐인데 답을 들을수록 궁금한 것이 늘어가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소. 뭔가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기도 하구려.”

“왕궁 안에 순도스님이 머물 거처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제께서도 황궁 안에 불당을 만들어 날마다 예배를 하신다고 하니 이를 방패삼으면 반대하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왕후께서는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셨나 봅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스님께서 가까이 계시면 더 자주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정말 좋을 것입니다.”

“네, 저도 부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순녕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갑작스러운 왕후의 질문에 순령은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그녀는 순도스님이 했던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스님께서 오시기 전, 음식을 준비하면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헌데 스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시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도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처님이라는 분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 궁금한 마음만 커진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우리 세 사람의 마음이 모두 같구나.”

 순령을 향해 활짝 웃으며 왕후가 말했다.

[불교신문3478호/2019년4월10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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