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수수 별 쏟아지는 ‘春 마곡’의 봄밤이라…

#1

봄에는 마곡사가 늘 먼저 떠오른다. 올해도 봄기운이 스며들고 있는 절집에 가서 그림을 그려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은 이미 공주로 달려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절마당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짙은 푸른밤 위를 가득채운 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한 번에 날아가는 마곡사와는 달리 밤길에 차를 몰아 가야하는 마곡사는 다른 곳이었다.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빠른 길이라며 가로등도 뜸한 국도 길을 가리켰다. 어두운 숲길을 두 발로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네 발로 기어갔다.

짐을 풀고 대중보전 앞마당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 자리를 잡고 별을 담았다. 상상으로 한 번에 날아올 수 있었던 별이 가득한 마곡사는 무심한 듯 웃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2

예불시간. 스님의 독경이 끝나자 죽비소리에 맞춰 모두 참선에 든다. 적멸의 시간이다. 법당을 이룬 목재들이 내는 삐걱삐걱, 두런두런, 들썩들썩 소리도 적멸의 순간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참선의 순간 갑자기 마음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여기저기 숨겨둔 마음이 일순간에 다 일어서는 것 같이 가슴이 답답했고, 세상에서 나 혼자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대리석 바닥에 유리구슬 한 통을 쏟아버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분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때 홀로 답답해하며 느껴야하는 고독함을 또 마주쳤다. 하지만 그 고독을 견디고 즐겨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있지 않은가. 

#3

새벽, 해우소를 다녀오는 길에 안개로 덮인 길을 걷다가 가벼운 산책을 했다. 푸르스름한 달이 아직 하늘에 있었다. ‘제가 여기 계신 달님 보러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하니 달은 희미하게 웃으며 진해지는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법당 안을 살며시 들여다보니 노보살이 양초에 불을 밝히고 혼자 합장을 하고 있었다. 들어설까 잠시 주춤하다가 돌아섰다. 나도 어느 순간에 아무도 없이 홀로 있고 싶었던 마음이 떠올라 날 붙들어 돌려 세웠다.

#4

나는 사찰에 있는 오래된 석물과 빛이 바랜 탱화를 좋아한다. 절이 품고 있는 시간을 부서지거나 닳은 석물과 탱화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부처의 얼굴이 남아 있지 않은 석불, 흐릿한 연꽃문양, 날개의 일부가 남은 비천상, 색이 바랜 사천상을 보면서 그 자리에 있었을 과거의 시간을 상상하고, 내 마음대로 그 모습을 그려 넣어본다. 

벽에 그려진 사천왕 탱화에 가만히 손을 올려봅니다. 차가운 돌의 기운이 손을 타고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배종훈(https://www.facebook.com/jh.bae.963)

[불교신문3478호/2019년4월10일자] 

배종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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