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자나 정수리 밟으면, 불 속에서 연꽃 피어나리”

 

조선시대 대표적 서정시인
‘격외선 도리’ 종지로 삼고
선교겸수…교는 화엄 중심
경전 교리 바탕 선지 정립

“佛法은 배가 되어 중생을 
열반 언덕으로 건네주시니 
‘삼계의 화택’을 면하려면 
삼보위신에 힘입어야 한다” 

부휴 선수는 왜적이 칼날을 휘두르는데도 차수를 한 채 의연한 모습을 보여 왜적들이 오히려 절을 하고 물러갔다는 일화가 전하는 오롯한 선사다. 사진은 화엄사 영전의 진영.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는 성은 김씨, 호는 부휴(浮休)이며 남원 출신이다. 어머니가 신승(神僧)으로부터 원주(圓珠)를 받은 태몽을 꾼 뒤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비린내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 

“뜬구름 같은 세상, 시끄러우니 저는 장차 출가할 것입니다.”

그 말대로 선수는 20세에 부모의 허락을 얻어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신명(信明)의 제자가 됐고, 그 뒤 부용 영관(芙蓉 靈觀, 1485˜1571)에게 심요를 얻었다. 선수는 서산 휴정과 사형사제로 20세 정도 아랫사람이며, 사명대사와 동시대 인물이다. 사명 유정과 교우관계를 유지하며 ‘법 형제’처럼 서로를 존중했다. 

그 뒤 덕유산, 가야산, 속리산, 금강산 등지에서 정진하다가 서울로 가서 노수신(盧守愼)의 장서를 7년 동안 읽었다. 선수는 유불(儒彿)을 넘나들며 여러 책을 섭렵했으며, 글씨도 뛰어났다. 그는 왕희지체를 익혔는데, 사명대사와 함께 당대의 ‘2난(二難)’이라 불릴 정도였다. 

선사 나이 49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덕유산 초암에 은거하고 있었다. 왜적이 물러났다고 생각하고 도량에 나오자, 수십 명의 적군이 선사를 둘러쌌다. 왜적이 칼날을 휘두르는데도 선수는 차수(叉手)를 한 채 너무나 의연했다. 선수의 태연 부동한 모습에 왜적들이 오히려 절을 하고 물러갔다.

이렇게 역경에도 의연한 선사들이 있다. 덕산 선감(782˜865)의 법을 받은 암두 전활(巖頭全豁, 828˜887)은 만년에 동정의 와룡산에서 선풍을 전개했다. 이 무렵, 나라에 도적떼들이 일어나 민심을 어지럽히자, 그 지역 사람들이 모두 떠났으나 스님만 홀로 절에 남았다. 어느 날 도적떼들이 절에 몰려와 공양거리를 달라며 스님을 칼로 찔렀다. 스님은 칼을 맞고도 태연한 자세로 소리 한번 외치고 입적했다. 그런데 이 소리가 수십리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백년만에 한 분 나올만한 고승이 이런 업보를 받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한암스님도 6·25한국전쟁 때 상원사에 남아 피신하지 않았다. 1·4후퇴 때 월정사를 불태우고 상원사에 올라온 군인들이 법당을 불태우려 하자,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수(受)하고 법당에 들어가 정좌한 채로 자신과 함께 법당에 불을 지르라고 했다. 결국 군인들은 법당 문짝만 뜯어내 불지르고 떠났다.

부휴 선수가 가야산 해인사에 머물고 있을 때 명나라 사신 이종성(李宗城)이 찾아왔다. 사신은 명황제의 왕명을 받고 “풍신수길(豊臣秀吉)을 일본 국왕에 봉한다”는 서책과 함께 바다를 건너려다가 해인사에 들러 선사를 찾은 것이다. 그는 선사를 한번 보고, 감복받아 며칠 선사 옆에 머물며 법문을 듣고 떠났다. 

얼마 뒤 선수는 무주구천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하루는 <원각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큰 뱀이 나타나 계단 아래에 누워 있었다. 원각경을 다 독송한 뒤, 뱀에게 가서 한발로 그 꼬리를 밟자 뱀이 머리를 들고 물러났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절하고는 “화상의 경전 독송에 힘입어 이미 고신(苦身)을 여의었습니다”라고 했다. 

선수는 광해군 때, 두류산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어떤 사람의 무고를 받아 제자와 함께 감옥에 투옥됐다. 선사는 옥에 갇혀서도 의연한 풍모를 잃지 않자, 유생들이 광해군에게 “스님이 그런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라며 변호했다. 광해군은 이 말에 선사를 방면했다. 광해군은 내전으로 선사를 모셔 법문을 듣고, 가사와 염주를 주었다. 

선사는 평생토록 신도들로부터 받은 것을 한 물건도 소지하지 않았고, 어떤 것이든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선사의 기품과 도량이 의연하여 선사를 따르는 자가 7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선수는 72세에 조계산 송광사에 머물다가 칠불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음 해 7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4˜1659)에게 법을 전하고, 목욕한 뒤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 “꿈같은 이 세상 노닐기를 일흔 세 해/ 오늘 아침 이 육신허물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네./ 고요한 적멸세계, 본래 아무 것도 없거늘/ 보리와 번뇌의 근원처가 어디 있겠는가?” 

법랍 57세, 나이 73세였다. 

부휴선수계 700여명 

선수에게는 제자 고한과 벽암 각성이 있다. 벽암에게서 취미 수초(翠微守初), 백곡 처능(白谷處能), 모운 진언(慕雲震言)이 있으며, 수초 문하에 백암 성총(栢庵性聰) 무용 수연(無用秀演)으로 이어진다.

취미 수초는 사육신 중 성상문의 후손으로 선교(禪敎)를 겸비했다. 백암 성총은 불전간행과 저술로 유명하다. 1681년 임자도에 배 한척이 표류했는데, 배 안에 <화엄경소초> <회현기(會玄記)> <정토보서(淨土寶書)> 등 190여권의 경전이 실려 있었다. 성총은 이 불서들을 보성군 벌교읍 징광사(澄光寺)에서 15년간에 걸쳐 5000매를 간행했다. 또한 화엄대법회를 개설하고, 경전 보급과 강경법회를 곳곳에 개설했다. 

성총은 <기신론소필삭기>·<치문경훈> 주석서, <사경지험기(四經持驗紀)>도 저술했다. <사경지험기>는 경전을 사경하고 수지 독송하며, 간행 유포한 이들의 영험담을 엮은 책이다. 당시 얻기 힘든 불서를 간행해 홍포했다. 

이렇게 부휴계 선풍도 서산계 선풍 못지않게 활발했다. 부휴 선수 입적 후, 1615년 벽암이 간행한 선수의 문집에서 “그는 영관의 정통을 이었고, 도통을 회통하여 집대성했다”며, 자파의 자긍심을 드러냈다. 성총은 1678년 보조 지눌의 비를 다시 세우고, 지눌을 일러 ‘동토의 대성’이라고 불렀다. 곧 부휴계 문도들은 송광사를 주된 본거지로 하면서 보조 지눌 의 유풍을 강조하고, 선교겸수의 선풍을 진작했다. 

‘격외선 도리’ 선사상 

부휴 선수는 첫째, 격외선(格外禪)의 도리를 종지로 삼고 있다. 선사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기틀을 당해서 활안(活眼)을 열고, 사물에 응해서 현풍(玄風)을 떨쳐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으면, 연꽃이 불 속에서 피어나리라.” “조주 무자에 의단을 일으켜 십이시중에 오롯하여라. 물이 다하고, 구름이 다한 자리에 이르면 곧바로 조사의 관문을 파하리라.” 또한 선의 3요(大信根·大憤志·大疑情)를 중시하면서 자성(自性)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강조한다. “도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나에게 있으니, 부디 먼 곳에서 구하지 말라. 마음을 거두고 산창 밑에 조용히 앉아 밤낮으로 조주선을 참구한다.” 

둘째, 선과 교를 겸해 닦는 선교겸수이며, 교에는 화엄을 중심에 두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선수가 만년에 송광사에 주석했는데, 지눌의 유풍을 본받아 선교겸수를 지향했다고 본다. 

부휴계 문도들은 송광사를 주된 본거지로 하면서 선교겸수의 선풍을 진작했다. 사진은 보조국사 비문 앞에 모셔져 있는 부휴 선수 부토탑.

선수의 말씀을 보자. “부처님 법은 배가 되어 중생들을 열반의 언덕으로 건네주시니 삼계의 화택을 면하려면, 삼보의 위신에 힘입어야 한다.” 또한 “‘<금강경>에서 여래는 진어자 실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라고 했는데, 부처님의 말씀은 절대 거짓이 없다”고 하면서 교를 강조하고 있다. 선수는 오롯한 선사로서의 모습이지만, 경전의 교리를 바탕으로 해 선지(禪旨)를 정립했다는 점이다. 

셋째, 앞에서 선시를 몇 편 소개했지만, 선수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다. “고향생각 흰 눈에 달빛 어리고 밤은 깊은데, 떠나온 고향생각 아득히 만리를 가네. 맑은 바람 뼛속 깊이 파고들어 홀로 떠도는 나그네, 시정에 젖어드네.” 

[불교신문3477호/2019년4월6일자] 

정운스님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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