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12>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와 수행의 단계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12>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와 수행의 단계
  • 등현스님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 승인 2019.04.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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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충족 결과는 무상하고 허망해…”

다른 사람 기쁘게 한 자만이
천상의 기쁨 누릴 자격 있어
쾌락에 대한 집착 내려놔야

해탈이 수행의 완성이라면, 윤회의 원인은 업이다. 그러므로 수행은 신구의 삼업을 다스림이다. 이러한 불자들의 삶이란 정견과 정사를 통해서 어떠한 삶이 불행한 삶이고 어떠한 삶이 행복한 삶인가를 아는 것과, 불행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마음에 심어진 프로그램을 교정한 후(諸惡莫作), 행복한 삶으로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衆善奉行)과 더 나아가서 그 행복을 마음의 평화로 승화하는 것(自淨己義)으로 요약될 수 있다(是諸佛敎). 이것이 불교에서 바라본 심리적 정화의 단계이다. 이는 모든 불교 종파에 해당되는 것이어야 한다.

첫째 제악막작(諸惡莫作)은 7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불행한 삶을 방지하는 길이다. 7악이란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 거짓말, 이간질, 거친 말, 꾸밈말이다. 그리고 그 7악의 과보는 지옥과 굶주린 아귀, 축생의 삶이다. 굴러다니는 돌도 내가 차면 내가 찬 세기만큼 나를 되돌려 찬다. 마찬가지로 내가 경험하는 모든 불행은 내가 행한 행위에 대한 결과라는 것이 바로 인과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인과의 가르침을 이해한 사람은 자신의 불행은 자신의 악업의 결과임을 알기에,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남을 탓하지 아니하며, 스스로에게서 불행의 원인을 찾아 교정하는 사람이다. 남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법이다. 이러한 인과에 대한 믿음과 이해 때문에 충동적인 악행의 프로그램과 잔인함 그리고 남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때문에 7악을 짓게 되는 것이고, 남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오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인과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중선봉행(衆善奉行)은 7악의 반대인 7선을 지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바라거나 지금 이 순간에 천상의 삶을 즐기는 것이다. 행복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남을 기쁘게 하거나, 남을 행복하게 한 그 순간과 그 복들의 과보를 받는 그 순간들의 기쁨이 모여서 행복이라는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기쁘게 한 사람만이 오직 인간과 천상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복을 지은 에너지가 천상이라는 형태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이 다하면 더이상 천상이 그에게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아궁이에 장작이 다하면 불이 꺼지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지옥도 본래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악을 지은 에너지들이 뭉쳐서 지옥을 느끼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경험되어지는 지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업의 형성과 집착이 있는 한 그 모든 세계들은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경험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스스로의 실상이 없어서 인연을 제거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 이것이 법의 무자성이다. 

셋째 자정기의(自淨己義)는 탐욕과 성냄 그리고 자아에 대한 무지로부터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천상이 아무리 좋아도 복이 다하면 떠나야하니 영원성이 없고, 남은 악업으로 인해 인간이나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더욱 더 큰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천상에 대한 집착을 떠나 해탈을 추구하는 마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천상의 세계들은 욕망의 세계이며 욕망을 충족시킨 결과는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상에서 누리는 쾌락에 대한 집착을 놓아 버려야만 하고, 더더욱 지옥이나 축생에 태어날 악업을 지으면서 누리는 쾌락은 말할 여지가 없이 놓아야만 하는 것이다(貪). 

그 후에 과거의 바르지 않은 삶에 대한 기억을 참회한 후 용서하고 놓아버린 다음 집착하지 않는 것이 불행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마음에 심어진 프로그램을 교정하는 것이다(瞋). 

[불교신문3477호/2019년4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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