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바라밀로 여래경지 공유하다

보살의 ‘걸림 없는 경계’는
자기 마음이 만드는 것이니
백봉거사도 해탈장자와 같아 

선재는 미가장자가 일러준대로 남쪽으로 떠난 지 12년만에 주림에 도착해 해탈장자를 만났다. 해탈장자는 제5 구족방편주의 선지식으로 법을 듣고 깨달은 지혜로 중생을 이익하게 해주는 좋은 방편을 많이 지녔고 십바라밀 중에 선정바라밀을 중심으로 나머지 바라밀을 수행했다. 선재의 지혜가 중생들이 많이 있는 도시에서 미가와 해탈을 만나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해탈장자시여, 제가 보리심을 일으킨 것은 부처님을 만나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부처님 마음으로 부처님의 서원을 지니고 부처님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빨리 청정한 보살의 길을 말씀해주소서.”

선재의 청법을 들으며 해탈장자는 과거 자신의 선근력과 부처님의 위신력과 문수동자의 호념하는 힘이 뭉치는 순간,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거두어들여 끝없이 회전케 하는 다라니’ 삼매에 들어갔다. 해탈장자는 그 삼매 속에서 시방의 부처님과 불국토와 도량이 온갖 장엄으로 빛나고 부처님들이 팔상성도의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셨던 일들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지혜를 선재와 함께 공유했다. 

“선남자여, 나는 이미 여래의 걸림 없는 장엄해탈문(如來無莊嚴解脫門)을 경험했다. 시방세계의 많은 여래를 뵙지만 진실로 저 여래들은 오고감이 없다. 왜냐면 내가 안락세계 아미타불을 뵈려하면 마음대로 뵙고, 보사자장엄세계(寶獅子藏嚴世界)의 비로자나여래도 다 뵐 수 있다. 하지만 저 여래는 오시지도 않았고, 내 몸이 거기 또 간 것도 아니므로 모든 부처님이나 내 마음이 모두 꿈같은 줄을 알며, 모든 부처님은 그림자 같고 내 마음은 흐르는 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부처님은 항상 나와 같이 계시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뵙는데 장애가 없다. 이것이 진정한 무애(無碍)다. 무애는 단순히 살아가는데 장애 없는 것만이 아니라,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나타나서 어둠을 깨트려 밝은 도를 만남에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장애가 없다면 거기에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하지 않으니 마음은 맑고 고요해진다. 이 때, 보살은 일체가 자기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청정한 세상을 속히 이루어야 한다. 

“선재여, 보살은 선으로써 마음을 다잡고, 법으로 내 마음을 윤택하게 하고, 여러 인연 속에서 내 마음을 훈련하고, 부지런하게 노력하며 내 마음을 경책하고, 참고 견뎌내어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혜로써 내 마음의 때를 씻어내고, 자재함으로써 내 마음을 개발시키고, 평등한 안목으로 내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부처님의 열 가지 힘으로 내 마음을 비추어 항상 살펴야 한다.

나는 부처님의 장엄한 무애법문을 듣고 보살의 걸림 없는 경계를 모두 자기의 마음이 만들어가는 것이니 걸림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 보여주었다. 이제 너의 몸 가운데서 모든 세계가 무너지고 사라져감을 나타내어도 내 몸과 여려 세계가 둘이 아님을 알 것이다. 이후 이렇게 미묘한 행을 실천한 것에 대해서는 남쪽 마리가라의 해당비구를 찾아가 물어라.” 선재는 이렇게 멋진 길을 안내하는 선지식이 있어 너무나 행복해 하며 길을 떠났다. 

마음 수행을 통해 거사선풍을 드날린 해탈장자와 같은 분을 들자면 죽는 순간까지 중생교화를 위해 정진한 백봉 김기추(1908˜1985)거사다. 56세에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받아 참구하며 동시에 재가자들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수행(禪)할 수 있도록 거사선(居士禪) 운동을 시작한 분이다. 독립운동 중에 잡혀 사형을 언도받고 수감되었을 때 무신론자였던 그가 자비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이 불현듯 떠올라 감방의 벽에 6개월간 빼곡하게 쓴 것을 보고 일본헌병이 호의적으로 사형집행에서 제외시켜주고 얼마 후 출소하는 관음의 가피를 경험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화두를 받아 들고 참구한지 1년만에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를 듣고 견성했다. 경전으로 눈을 돌린 그는 <금강경>을 5일만에 탈고한 뒤, 대중에게 <금강경> <유마경>을 강설하니 강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봉거사의 인연으로 결성된 재가수행단체인 ‘보림회’와 벌써 1000번의 법회를 이어가고 있는 ‘부산거사림회’가 탄생되어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불교신문3473호/2019년3월23일자]

원욱스님 공주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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