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最古) 최대(最大)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회향’
최고(最古) 최대(最大)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회향’
  • 이성수 기자
  • 승인 2019.03.21 0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20일 보수정비준공식 거행
수리 후 미륵사지 석탑 동북측. 여법하게 보인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기념법회 봉행…월주스님 법문
230억원 예산 투입 상처 치료
과학기술로 보완 안정성 확보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20년간의 보수 정비를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전라북도는 4월30일 오후 2시 익산미륵사지 현장에서 ‘보수정비 준공식’을 개최한다. 이날 준공식에는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조실 월주스님(조계종 원로의원), 금산사 주지 성우스님, 송하진 전북지사, 정재숙 문화재청장, 정헌율 익산시장,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6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준공식이 끝난 뒤에는 미륵사지 현장에서 금산사 조실 월주스님을 법사로 기념법회를 봉행한다.

지난 1998년 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 노후 등 구조적 문제를 확인한 미륵사지 (서쪽)석탑은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6층까지 해체 수리를 결정하면서 보수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2019년까지 20년간 23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석탑을 해체 보수하고, 학술·기술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가설덧집 설치, 해체 및 발굴조사, 사리장엄구를 수습했다. 이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보수 설계 및 석탑 조립, 사리 봉안, 보존처리를 진행해 미륵사지 석탑의 상처를 치료하고 새롭게 단장했다.

수리를 마친 후 미륵사지 석탑 남동측.

이번에 열리는 ‘보수정비 준공식’은 국내에서 단일 문화재로는 가장 긴 20년 동안 체계적인 조사연구 및 수리의 성공을 자축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화재청은 “과도한 추정 복원을 지양하고, 원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고, 전통기법과 과학기술의 보완을 통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면서 “국제적 기준의 석조문화재 수리방법론을 제시하고 수리 기술 고도화를 선도했다”고 자평했다.

백제 무왕 40년(639) 세워진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서쪽) 6층을 기준으로 높이 14.5m, 폭 12.5m, 무게 1830톤 규모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石塔)이며, 백제 석탑의 시원(始原)이자 한국 석탑 전체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1915년 이후 미륵사지 석탑 남동측.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생생하다.

특히 1층 내부는 십자형 통로공간으로 구성돼 있고, 목조와 석조 건축기법이 조합된 독특한 양식으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쪽면 전체, 남쪽면 상당부분, 북쪽면 절반이 무너져 6층까지 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다. 본래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17세기를 전후해 붕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랜 기간 방치된 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콘크리트(시멘트)로 보수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제적 보존 원칙에 부합한 보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석조문화재 수리기술 개발 및 조사 연구가 두드러졌다. 5건의 기술 특허를 받고, 9건의 조사연구보고서를 펴냈으며, 39건의 논문 및 학술발표가 이뤄졌다.

1910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동측. 한 눈에 봐도 훼손 상태가 심각하다.

문화재청은 준공식이 끝난 뒤에는 미륵사지 석탑 수리보고서를 발간하고, 오는 10월 사업을 종료할 방침이다.

한편 미륵사지 (동쪽) 석탑은 1991년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주관으로 이뤄졌다. 당시 동탑 복원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9층이었음을 알려주는 부자재가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