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사단 광주전남지역단 염불봉사팀의 염불의식 모습.

우리 부부는 오늘도 단복을 차려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일반 불자로부터 염불봉사 요청이 있어서 장례식장에 들러야 한다. 그동안 염불 의뢰가 뜸했는데 환절기라서인지 어제부터 연일 염불봉사다. 

염불봉사는 지역단으로 염불의뢰가 들어오면 염불봉사팀에 이를 알리고, 총무는 곧바로 팀원들에게 공지를 한다. 군대로 말하면 5분 대기조와 같은 조직이다. 언제 염불 요청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의뢰가 오면 곧바로 공지하고, 형편이 되는 포교사들로 팀을 꾸려 현장에 가는 것이다.

오늘도 장례식장에는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10명 정도가 모였다. 팀원들과 함께 번을 설치하고, 각자 물 한통씩을 챙긴 후에 자리를 잡았다. 상주에게 우리가 오늘 염불하는 의미를 설명하고, 우리의 염불의식과 상관없이 조문객은 그대로 받도록 당부한다. 이어서 보례진언을 시작으로 천수경, 청혼, 아미타경, 왕생발언문, 의상조사 법성게 등을 목탁에 따라 염불하고 나면, 1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 오늘은 왠지 염불이 잘된다. 돌아가신 분의 위폐에 卍(만)자가 새겨져 있어서 그런지, 목탁소리가 정갈하고 팀원들의 염불송도 일사불란하게 이어진다. 

염불의식을 마치고 함께한 팀원들과 공양을 하면서, 잠시 얘기를 나눈 후에 우리집 보살과 함께 집에 들어서니, 밤10시가 다 되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구나 생각하니, 포교사로서 조금은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때로는 포교사 활동에 나태해지고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주위의 포교사들로부터 힘을 얻는다.

“나는 장의염불을 3년간 꾸준히 하기로 원을 세웠다”는 부부 포교사, 섬포교를 위해 새벽 4시, 겨울 찬바람에 힘겨워하면서도 기꺼이 나서는 노포교사, 매번 군장병들의 먹거리를 위해 집에 있는 반찬까지 들고 나와 상을 차리고, 지역단장을 하고 연세가 지긋함에도 자청해서 안내봉을 들고 차량을 통제하는 모습. 특히, 아직 포교사고시 1차 합격자라서 단복도 없는데, 연일 염불봉사에 참여하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음률로 더듬거리면서도, 열정 하나로 움직이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는다.

무엇이 저들을 난장에 내모는 걸까? 그리고 저들은 이런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나서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기꺼이 자진해서. 자신에게는 지금도 화두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 숙제다. 그런데 나에게서 답을 찾는다면, 난 이 일이 그냥 좋아서 하는 거 같다. 함께하는 도반이 있어 즐겁고, 그래서 이 좋은 거를 함께 공유하고 싶어, 포교 활동을 하는 것 같다. 

부처님께서는 전도선언을 하면서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라고. 그런데 그 길이 마음을 내고 실천하기에 쉽지 않은 길이다. 

포교사의 노래 중에 “어두운 세상에 법등을 들고 한없이 가야 하는 포교의 길”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울컥하는 마음에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 포교사들 대부분이 같은 심경일 것이다. 근래 들어 불교계가 위축되고 있는데, 그나마 포교사들이 있어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불법 홍포를 위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소의 뿔처럼 어둠을 뚫고 한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473호/2019년3월23일자]

장송기 포교사단 광주전남지역단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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