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설악산 화암사에 은사 스님 제사를 모시러 갔다. 사찰 초입에 있는 부도전에서 은사이신 도명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입적하신지가 벌써 20여 년이 넘어 이젠 그 호탕하던 웃음소리마저 가물가물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마치 고향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거친 손을 잡아 드리는 듯, 부도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보았다. 

해인사 학인시절 방학 때 인사드리러 갔더니, 공부 열심히 하라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부도 옆에 나란히 세워진 탑비의 행장을 읽어보며 은사 스님의 일생을 그려보았다. 탑비에 새긴 글은 정휴스님께서 쓰셨으며, 작년에 입적하신 신흥사 조실 오현스님과 세분은 지기처럼 가깝게 지내셨다. 먼저 간 도반을 위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비문까지 적어주시니 상좌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서 나오는데 은사 스님 부도 옆에 새로운 부도와 탑비가 있어 누구신가 하고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지금 화암사에 주석중인 정휴스님께서 당신의 탑비명을 미리 지어 놓으신 ‘자찬탑비(自撰塔碑)’였다. 도반 옆에 미리 자신이 앉을 자리를 정해 놓고, 지나온 삶과 앞으로 남은 삶을 정리해서 돌에다 새겨넣으신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신의 묘비에 써 넣을 묘비명을 직접 썼다. 이른바 자찬묘비(自撰墓碑)였다. 사대부의 관습이기도 했다. 자찬묘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인생에 대한 통찰인 동시에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글이었던 셈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인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통찰력과 해학이 담긴 구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후기 문신이며 대학자로 삼척부사를 지내셨던 허목 선생도 자명(自銘)을 남겼다. “말은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다. 부질없이 성현의 글 읽기만 좋아했지 내 허물은 하나도 바로잡지 못하였다. 이에 돌에 새겨 후인을 경계하노라.” 

가슴이 뜨끔한 글이다. 이제 나의 차례다. 난 과연 어떤 탑비명을 써서 남은 수행여정의 경책과 삶의 지남(指南)으로 삼을 것인가. 

[불교신문3473호/2019년3월23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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