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내 방에 돌아오면
습관처럼 부채를 만지작거린다.
스님이 산 속에서 세상을 구도하는 것이나 
내가 수술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을 한다. 

여러 해 전 겨울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부채를 진열한 가게를 둘러보다가 흰부채(白扇)을 하나 샀다. 그 부채를 우편으로 그 스님에게 보냈다. “철이나 격에 맞지 않는 하로동선(夏爐冬扇)이오나, 한 자 써주시면 한 여름 시원하게 지내겠습니다.”

몇 달이 지나 날씨가 따뜻해 질 무렵 찾아 뵈었을 때 잊지 않고 ‘운문주고삼문(雲門廚庫三門)’ 여섯 글자와 스님의 법호를 적어주신 그 부채를 돌려받았다. 가슴이 뿌듯해지면서 그 분이 해설하신 ‘벽암록’의 내용이 생각났다. 

“그대에게 광명을 가져오는 자가 누구인가?” “부엌(廚庫)과 삼문(三門)이다” 라는 화두에 대하여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세윤회를 면한다”고 쉽게 풀이한 부분이 나온다. 선방 문고리가 그리도 영험한 것일까?

부채를 받은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병원 속, 특히 수술실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작동하여 견딜만했지만, 병원을 나와서 연구실로 걸어가는 5분 거리 동안 흠뻑 땀을 흘리곤 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5층은 수술실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중환자실이다. 들어가는 입구는 통제되고 있으며, 신분증을 계기판에 대어야 첫째 문이 열린다. 들어가면 신발장이 있어서 외부의 신발을 벗어놓고 수술실 신발로 갈아 신는다. 휴게실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복도를 통해서 공기샤워(Air shower)가 있는 문을 지나야 수술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소독약과 솔로 손을 닦고 마지막 자동문의 홈에 발을 대면 문이 열려서 수술준비가 되어있는 내 수술실로 들어간다. 외부의 오염된 곳에서, 무균상태의 수술실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3개 이상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며 여러 문을 통과하여 환자가 마취돼 있는 수술실로 가면서, 나는 그 스님이 계시던 선방으로 가던 길을 생각한다. 일주문을 지나 피안교를 건너고 어두침침한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에 이르면, 법당과 선방이 보였다. 세간의 먼지는 언덕을 오르며 삼문을 지나는 동안 다 털려나갔다. 스님을 뵈러 선방에 들어가려면 선방 문고리를 잡고 당겨 문을 열어야 한다. 나를 맞으시며 환히 웃으시는 그 얼굴이 눈에 선하다.

내가 소독된 수술복을 입고 장갑을 끼면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두 개의 무영등이 켜지며 환자의 수술부위를 비춘다. 시야가 환해져 잘 보인다. 이제 수술이 시작된다. 수술실의 무영등은 내게 광명을 가져오고, 나의 눈을 밝히는 빛은 수술 받는 환자에게도 치유의 빛을 가져오리라 기원한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내 방에 돌아오면 습관처럼 부채를 만지작거린다. 스님이 산 속에서 세상을 구도하는 것이나 내가 수술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을 한다. 

세 개의 문을 지나 스님이 계시던 선방의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안도했던 것처럼 나는 오늘도 여러 문을 지나 수술실에 도착하여 내 본분을 다했다는 생각이 나를 편안케 한다.  

[불교신문3472호/2019년3월20일자]

황건 논설위원·인하대 성형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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