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이 없어 더 특별한 산사

#1

저녁 8시 전에는 경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사찰 담당자의 목소리가 계속 귓속에 있는 것 같았다. 퇴근을 하고 서울을 출발해 빠듯하게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녁도 먹을 시간이 부족해 달리는 차안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토요일에 편하게 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8시가 다가오면서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 조바심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에 들어서면서, 사위가 어둠에 들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졌다. 속도를 낼 수 없는 1차선 국도 때문인지, 자동차 전조등에 의지해 나아가야 하는 어둠 때문인지는 몰라도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창문을 내리고 팔을 내밀어 바람을 가르며 굽이굽이 도니 어느새 부석사 입구에 들어섰다. 시계는 7시4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

비 때문인지 경내는 아침에도 밤처럼 소리가 없다. 빼꼼히 대웅전 문을 열어본다. 등을 켜지 않아 어두운 실내에 부처가 가만히 웃고 있다. 합장 반배를 올리고 마음으로 말한다. 부처님, 행복한 아침입니다.

#3

빗소리가 좋아 방문을 열었더니 시원한 산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방으로 밀려든다. 냄새, 맛 등에 크게 민감하지 않지만 확실히 도시의 공기와는 다르다.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지만 각각의 소리가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고, 음악처럼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언제나 이렇게 절집에서의 시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내 앞에 펼쳐든다. 오늘은 어떤 카드를 고를 것이냐고 느긋하게 처마 끝 풍경이 묻는다. 

#4

멀리 서산 바다가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부석사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와 같은 이름이다. 동일한 창건설화를 지닌 선묘낭자와 의상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절이다. 절집을 떠나기 전 가벼운 차림으로 절 뒤편으로 오르니 바다가 더 가까이 보인다. 선묘낭자에겐 가족과 고향이 있는 땅, 의상대사에겐 부처가 있는 정토. 그 둘이 꾸었을 꿈을 생각하며 해가 바다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참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낙조를 만났다.

배종훈(https://www.facebook.com/jh.bae.963)

[불교신문3472호/2019년3월20일자]

배종훈 작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