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방 뒤로 보이던 아파트가 재건축 공사를 시작했다. 아침마다 아파트 옥상 위로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녔는데 아쉬웠다. 

나는 비둘기들이 떼지어 날 때마다 저곳이 비둘기들의 학교가 아닐까 상상하곤 했었다. 꼭 하늘 운동장에서 술래잡기 하느라 이쪽저쪽으로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아파트 옥상에 포클레인이 올라오더니 위에서부터 부셔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많던 비둘기들은 싹 자취를 감추고 서서히 사람들이 살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시멘트 건물 안에 숨겨진 방을 보며 한때 저곳이 사람들이 온기를 품고 살았던 공간이었나 싶었다. 저 방에서 사람들은 저녁밥을 차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늘 있었던 시시한 사건을 얘기하거나 얄미웠던 사람에 대해 말하며 밥을 먹었을 거다. 또 누군가는 가족과 싸워 방문을 잠그고 화를 내며 씩씩 거리기도 했을 거다. 

누군가는 서로 꼭 껴안고 TV를 보거나, 늦잠을 잔 주말 아침 소파에 누워 TV를 봤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별의 아픔으로 한밤중 방안에서 홀로 숨죽이며 울었을 수도 있으리. 조금씩 미워하거나 조금씩 사랑하거나, 조금씩 권태롭거나, 조금씩 외롭거나, 조금씩 기쁘거나, 조금씩 행복하거나, 그러면서 조금씩 삶을 살아갔다. 우리의 삶은 작건 크건 방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재벌 총수는 대저택의 으리으리한 집일 테고, 서민들은 자그마하거나 조금 큰 집일 것이다. 

그 집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산다. 차가운 시멘트와 벽돌로 만들어졌지만 그곳을 채우는 건 사람들이고 우리는 어울려 살기에 서로의 체온을 품는다. 그래서 집은 따뜻해진다. 집에 사람이 사라지면 차가워지고 허물어진다. 비둘기도, 다른 생명도 사라진다. 결국 우리 삶은 서로의 체온을 부비며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면서 집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사람이 사라진 허물어진 낡은 아파트 빈방의 속살을 보며 그곳을 채웠던 사람들의 추억을 떠올린다. 우리는 체온을 가진 인간이고 나는 그 체온 속에 살고 싶다. 우리는 따뜻한 사람이다.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걸 새삼 생각해본다.

[불교신문3472호/2019년3월20일자]

이은정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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