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화신…성불 이끄는 존재”

어람관음-마랑부는 거친 이들 치유해 귀의 
노힐부득ㆍ달달박박은 미륵불ㆍ아미타불로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아래 새내기로 보이는 학생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서툰 몸짓이 개강한 캠퍼스를 오간다. 이 계절의 청춘은 초심, 기대, 희망, 풋풋함과 함께 봄이 된듯하다. 그러나 그 너머, 애써 쓰고 있는 마스크 속의 미세먼지처럼 이들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디 젊음뿐이겠는가?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하며, 과거에 대한 후회와 상대적 박탈감에 우울하다. 나를 조건지우는 지나온 과거, 나침반이 되어 이끄는 미래, 그 가운데 있는 현재의 나.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조건이 되어 저마다의 서사가 만들어 진다. 

서사는 오래도록 서정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공감과 공명을 기반으로 하는 치유로서의 서사는 자기이해를 위한 기본이다. 

시에는 시의 서사가 있고,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에게 자기서사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작품서사에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며 이를 통해 자기서사가 변하는 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문학에서 서사는 불경(佛經)의 유입으로 급격히 발전한 것으로 본다. 경전에 가득한 비유와 은유는 설법을 넘어 그 자체가 흥미로운 서사문학이다. 

대표적으로 관음보살 고사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고 당시 사회에 공명한 서사다. 천수천안관음보살인 묘선공주는 자신의 손과 눈을 보시한다. 극한의 효심은 전통 ‘효’사상에 부합하였고 이것은 불교의 확산을 돕는다. 묘선의 효는 육체적인 병을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탐진치로 가득한 부친을 비롯한 가족과 신하, 나아가 중생의 마음을 치유한다. 부처님이 중생을 고치는 좋은 의사인 것처럼 관음보살도 치유의 주체이다. 다른 이야기인 바닷가 마을에 나타난 어여쁜 아가씨 어람관음-마랑부는 마을 사람의 거친 마음을 치유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한다. 미모로 수행을 도와준 설화로 우리나라의 보덕각시가 있다. 관음보살인 보덕은 회정스님이 계율을 지키도록 도와주며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노힐부득(努不得)과 달달박박(朴朴)’에는 치유사 관음이 숨어있다. 

신라시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함께 수행하기로 약속한 친구이다. 집을 떠나 수련하였으나 아내와 자식을 두었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일반인과 다름없는 생활에 무상을 느끼고 발심하여 더 깊은 산속으로 출가한다. 둘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각자 다른 암자에서 염불 수행을 이어간다. 어느 날 인적 드문 이곳에 여인이 나타나 묵어갈 것을 청한다. 달달박박은 계율을 충실히 지켰으므로 여인을 거절한다. 

그러나 노힐부득은 처지를 가엽게 여겨 허락한다. 임신한 몸이었던 여인은 갑자기 출산을 하고 노힐부득은 그 바라지와 목욕을 돕는다. 여인이 목욕한 물은 금빛으로 변하고 그 물에 목욕한 노힐부득은 미륵불이 된다. 나중에 노힐부득이 남겨준 물에 목욕한 달달박박은 아미타불이 된다. 여인을 최고의 문학치료자라 주장하는 국문학자는 그러나 여인이 관음보살 화신이라는 사실은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초점을 달리하여 치료의 주체를 찾아보면 갈림길을 제시하고 선택의 연기(緣起)를 보여주는 관음보살에 방점이 찍힌다. 

관음보살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두 성인을 성불로 이끈다.

관음은 무한 자비를 베푸는 보살이지만 서사로 만나는 우리는 각자 다른 부분에 공감하고 공명하며 열린 마음을 경험하게 된다. 공감하고 공명하는 상대를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의사이건, 상담사이건 혹은 불보살이건. 그렇지만 문학과 예술이 지닌 작품서사라면 이렇듯 언제나 가능하다. 나와 서사는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며 그 안에서 공감하며 나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느낄 수도 있으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서사 속의 관음은 자비의 화신으로 불교 최고의 목표인 성불을 이끄는 존재이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행복을 이끄는 최고의 치유사다. 

[불교신문3471호/2019년3월16일자]

경완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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