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 지닌 그대가 부처님입니다”

제자인 선재에게 오히려 절하며
보살이 갖출 자세 몸소 보여준 
미가장자 법문에 보살경계 성취

선재가 만나는 네번째 생귀주(生貴住)선지식인 자재국 주약성의 미가장자는 어진 의사로 보살의 묘한 음성다라니광명법문을 펼쳐 보인다. 미가(megha, 彌加)는 구름의 뜻으로 덕으로써 중생들을 보호하듯 덮어주고, 법의 비를 내려 중생을 이익하게 하며, 삿된 사상을 펴는 이들을 한 번에 제도하는 능력을 지닌 분이다. 미가장자는 아리아민족에 정복당한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다 자손으로 가장 귀한 존재에서 최하층 카스트로 전락했지만 뛰어난 경영능력과 어진 의사로 활동하면서 민중의 지도자가 된 분이다. 미가장자의 뛰어난 능력은 모든 중생의 언어를 다 이해하는 언어학박사이며 통역전문가였으니 만나는 모든 이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다 치유하는 분이었다. 

선재가 주약성에 이르러 살펴보니 시장 한가운데 사자좌에 올라 만 명의 사람들에게 바퀴 윤(輪)자 장엄법문을 설하고 있는 미가장자가 보였다. 선재가 앞에 나아가 인사를 드리니 미가장자가 물었다. 

“너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느냐?” “네! 물론이지요.”

그러자 미가장자는 황급히 사자좌에서 내려와 선재에게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온갖 향과 꽃과 온갖 공양을 올리니 선재가 몹시 당황했다. 미가는 선재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했다. “보리심을 지니면 모든 부처님의 종자가 사라지지 않게 되고,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니 천왕들이 그대를 호위합니다. 그대가 선지식을 찾아나서는 까닭이 모든 중생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것임을 나는 모두 압니다. 보리심을 지닌 그대가 부처님입니다.”

삽화=손정은

스승인 미가장자가 제자인 선재에게 절을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바로 보리심이 부처님이 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선재가 선주 비구로부터 성취한 근본 지혜광명은 바로 근본지(根本智)를 이룬 것으로 그가 누구든 부처님과 더불어 한 몸이며 동일한 지혜이기 때문에 누구든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배우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배우려는 이를 부처님처럼 공경하는 것은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들이 지녀야 할 자세임을 미가장자가 몸소 보여준 것이다. 

미가장자가 다시 사자좌에 올라 선재를 향해 입으로 온갖 광명을 펼쳐내는 신통을 보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광명으로 바퀴 윤(輪)자 장엄법문을 펼치니 자모(字母)를 따라 음성의 소용돌이가 걸림 없이 법성의 바다에 들어가듯, 듣는 이들이 다 이해하고 감동하여 실천하니 모두가 한 몸으로 청정한 보살의 경계를 성취하게 됐다. “선재여, 나는 다만 이 묘한 음성다라니 광명법문만 안다. 보살들이 모든 중생의 여러 가지 생각바다와 시설바다, 이름바다, 말씀바다, 차별 있는 법구바다, 차별 없는 법구바다에 두루 들어가는 이 모든 세간의 주문바다와 모든 음성의 장엄한 바퀴와 모든 차별한 글자바퀴에 들어가는데 나는 이런 공덕까지는 다 알 수 없다, 남쪽으로 가다가 주림국을 만나면 그 곳에서 해탈장자를 찾아가라. 그가 너에게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성취하는지 일러 줄 것이다.”

모든 음성다라니에 통달하여 중생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그들의 의지처가 된 의사 미가와 같은 분을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 수덕사 초대방장 혜암(慧庵, 1885˜1985) 큰스님 곁에 머물던 유발상좌 금오 김홍경 거사다. 서울 오면 꼭 들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간 ‘신농백초한의원’에서 나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주말 병원 업무가 끝나자 젊은 한의대생들이 한의원이 터져나갈 듯 모여들었다. 앉을 자리도 없이 모여들어 나가지 못하고 갇힌 나는 꼼짝없이 2시간 가량 잊혀져 가던 조선 중종 때 스님인 사암 도인의 침법에 대해 듣게 됐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청중을 휘어잡으며 거침없이 강의하더니 그들과 <사암한방의료봉사단>을 만들어 보시행을 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불교신문3471호/2019년3월16일자]

원욱스님 공주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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