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글 소중함 일깨운 명화
조선 지식인 33인의 목숨 건 작업 
학생들까지 나서 방언 수집 ‘감동’
옛부터 많은 사람들 헌신 노력 덕분
현재 우리말과 글로 부처님 법 전해 

지난 연말 영화 ‘말모이’를 관람했다. 영화는 한 해를 열심히 살아 온 나 자신에게 주는 ‘쉼’이였다. 나는 영화든 드라마든 제목에서 줄거리의 흐름을 먼저 읽는다. 그 만큼 제목이 중요하다. 제목은 모든 관객과 통용되는 팩트(fact)다. ‘말모이’라는 영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한 번에 줄거리가 머릿 속에 입력되지 않았다. 혼자서 제목을 두고 말 찾기 숨바꼭질을 했다. ‘모이’ 만 풀어보자면 ‘먹이’로도 해석된다. 하여 말(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일인가, 아니면 ‘모임’이라는 뜻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묻은 채 영화를 관람했다. ‘말모이’는 추측했던 그런 내용이 아니라 최초의 한글사전이라는 것을 영화를 관람하면서 알았다. 

최남선이 설립한 조선 광문회에서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민족주의적 애국계몽수단으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사전 편찬을 비밀리에 시작한다. 그 당시 초중고생 뿐 아니라 각계 각층의 남녀노소가 일제의 눈을 피해 전국 각지에서 방언을 비롯한 말을 수집한다. 지방마다 다른 말(방언) 하나도 현장에 가서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찾고 왜 이 말을 사용하는지 직접 조사한다. 말을 모으는 것은 곧 세상 속 지식을 모으는 지식 축적이자 민족의 정신이며 공동체 이념을 구현하는 매개체였다. 그래서 영화 속 지식인들은 어떤 말을 표준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연구했다. 

옛말, 방언, 새말, 전문어, 고유명사 등을 교육적으로 각색하여 사전을 편찬했다. 영화는 단순히 말을 모으는 것에서 머물지 않는다. 말과 글을 빼앗긴 슬픔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데서 나아가 인간답게 사는 법, 존경받는 어른의 모습, 배신자의 쓰라림을 다독여주는 지도자의 태도 등 여러 사람의 모습과 가족의 소중함 등을 담아낸다. 그리하여 영화는 시대극을 넘어 보편적 삶과 가치를 드러낸다. 다양한 스토리와 장치가 합쳐져 영화는 우리말이 태어난 원동력과 우리말과 얼을 지켜낸 민족의 저력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국어사전을 펼치면 한 단어에 딸린 해석이 여러 가지이고 뜻도 다양하게 통용됨을 발견한다. 특히 글을 쓰는 작가들은 사전 속 표준어를 중심으로 삼으면서도 여러 뜻으로 풀어쓰며 국어를 풍부하게 만든다. 영국인들의 ‘세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자부심도 어휘를 풍성하게 만드는 작가의 소중함을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명대사는 기존 사전에 없는 새로운 말로 단순히 말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새로운 대사 한 마디가 마음을 만들고 그 마음이 세상을 만드는 셈이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말들은 그래서 단순한 말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누군가가 목숨을 다하여 지켜 왔고 또 인고의 고통을 통해 아름답고 훌륭한 말을 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읽고 쓰는 것이다. 말 한마디 글 한자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면적 교육과 미디어의 발달에 힘입어 표준어가 널리 통용되고 의사소통을 하지만 지방마다 사용하는 방언(사투리)은 그 지역 사람이 아니면 이해 불가한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달리 생각하면 방언이 있기에 표준어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말과 글은 지역 시대 계층을 넘어 모두 소중하며 고이 간직하고 전수해야 할 보물이다.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의 진보적 지식인 33인이 우리 글, 정리된 문법 사전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말로 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도, 전할 수도 없었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그 분들의 헌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불교신문3471호/2019년3월16일자]

 

정운스님 논설위원·보령 세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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