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은 일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다. 잿빛마음을 안고 걷다가 바라본 밤하늘에 우뚝 선 십자가가 그렇게 따뜻한 위로를 한 적이 있었다. 우연찮게 발견한 십자가는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세상이 다 내편이야’ 하는 자만심을 가득 담은 채 무엇하나 무서울 것이 없었던 어느 때, 도심의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성당의 낮지만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잘난 것 하나 없이 잘났다고 하는 영혼들에게 잠시나마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게 하는 겸손을 만들어 주었었다.

기차 속에서 상념에 젖어 문득 바라본 창밖 풍경에 스친 어느 사찰의 여법한 붓다의 모습은 다가오는 모든 일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이 그렇게 창밖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눈을 감고 마음의 상념을 쉴 수 있었다.

종교의 성전이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에게도 삶의 희열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 순간 마음의 고개를 숙이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순간 위로와 평안을 줄 수 있는 성전이 곳곳에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지으려고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증오하는 마음을 한 순간 쉬게 해 줄 수 있다면 나는 그 성전은 이미 온전하게 그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가장 힘든 순간, 사람이 가장 교만해지려는 순간, 지혜가 필요한 순간,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 못지않게 교회와, 성당, 사찰의 역할은 그 자리에서 그 자체로 본연의 역할로 사람들에게 힘과 에너지를 준다고 나는 믿는다.

수다타 장자가 기원정사를 지어 희사하였기에 부처님께서는 그 곳에서 중생들을 위해 진리를 펴실 수 있으셨고 그리해서 중생들이 더욱 행복할 수 있었던 성전의 역할. 지금의 우리 또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전을 만들고 힘과 에너지를 모아 청정하게 지킬 일이다.

[불교신문3471호/2019년3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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