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민추본, 조선인 노동자 131위 안치된 日 천덕사서 추모법회
해방 후 귀국선에 오른 강제징용자
태풍 만나 고향 땅 못 밟고 희생돼
죽어서도 일본 사찰 곳곳 떠돌다
지난해 5월 이키섬 천덕사에 안치…
“억울한 마음, 조금이라도 위안 받길”
1945년 8월15일. 일제에 강제징용 돼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해방을 맞아 꿈이 그리던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일본에 살던 조선인만 어림잡아 140만 명. 한반도 행 배편은 턱없이 부족했다. 패전국인 일본 또한 조선인 귀국 수단 마련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이 지체되자 일부 조선인들은 업자에게 돈을 주고 ‘야미선’이라는 작은 목선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허름한 배 안에 빼곡하게 앉아 부푼 꿈을 꾸고 있던 조선인들을 기다리는 건 강력한 태풍이었다. 1945년 9월과 10월에 몰아친 태풍에 야미선은 속절없이 난파됐다. 그렇게 희생된 주검은 고향이 아닌 조류를 타고 일본 이키섬과 쓰시마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이들은 여전히 고통 받던 땅에 머물고 있다.
종단이 허무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법석을 마련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원택스님, 이하 민추본)는 지난 12일 일본 나가사키현 이키섬 내 천덕사에서 해방 직후 고향으로 향하는 배가 침몰해 숨진 조선인 영혼들을 위로하는 추모법회를 봉행했다.
이 곳 천덕사(덴토쿠지)엔 아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131위의 조선인 유골이 안치돼 있다. 이 유골들이 천덕사로 이운되기까지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이 유골들은 이키섬에서 발견된 유골 86위와 쓰시마에서 수습된 유골 45위이다. 그동안 일본 사찰 네 곳을 돌고 돌다가 2003년 일본 사이타마 현에 있는 곤조인 사찰에 안치됐다. 그러나 지난해 곤조인 사찰에서 내부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희생자 유골을 보관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생겼다.
유골을 안치할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면 일본 후생노동성 창고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봉환이 어려울뿐더러 유족을 찾기도 쉽지 않게 된다. 이 때 양심 있는 일본 종교계에서 먼저 대응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민추본을 비롯한 1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긴급 기자회견 등을 통해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탰다. 결국 이키섬 내 작은 사찰인 천덕사에서 보관을 자청하자 일본 정부도 동의해 지난해 5월 다시 이키섬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날 법회엔 민추본 사무총장 진효스님과 강제 징용 역사문화 순례에 함께한 재가자 20여 명, 조선인 강제징용 2세 배동록 씨, 천덕사 주지 니시타니 토구도스님 등이 함께했다. 일본 지역 언론에서 취재하는 모습도 보였다. 법회 참석자들은 한 마음으로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영가 축원을 하는 민추본 사무총장 진효스님의 간절한 염불소리가 더해져 법당엔 엄숙함이 감돌았다.
특히 참석자들은 추도문 낭독을 통해 “이런 사태를 유발한 일본 정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을 하고 배상과 유해 송환에도 적극 임해야 한다”며 “우리 불자들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에 관심을 놓지 않을 것이며 평화와 통일을 위한 걸음에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추본 사무총장 진효스님은 추도사에서 “유골을 모실 수 있도록 깊은 자비심을 내준 천덕사 주지 스님께 감사드린다”며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영혼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천덕사 주지 니시타니 도쿠도스님도 “여러분들의 간절한 마음을 받고 이 곳에 모셔진 131위의 희생자들이 위안을 얻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키섬 해안가 ‘한국인 유골 위령탑' 참배
법회 이후 참석자들은 이키섬 해안가에 위치한 ‘한국인 유골 위령비’를 찾아 참배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 위령비에도 해안에서 수습된 조선인 유골이 모셔져 있다는 전언이다. 무엇보다 1974년부터 이키섬에 떠내려 온 조선인 유골 발굴 작업을 펼치며 일본 정부의 지원 요청과 안치장소 모색 등에 평생을 노력한 마사키 미네오 씨가 현장에 나와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마사키 씨는 처음 조선인 유골이 수습됐던 장소와 그간 활동한 내용을 설명하며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천덕사에 머물고 있는 유골 이외에도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내 사찰에 안치된 유골의 수는 2770위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지금도 이키섬과 쓰시마에는 적잖은 조선인 유골이 발굴조차 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최근 조선인 조난자 위패와 유골에 대한 사연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246명이 탄 귀국선이 실종되고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귀국선의 조난 사고가 새롭게 조명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민추본 사무총장 진효스님은 “역사는 책으로 담으면 글자가 되지만 마음으로 담으면 우리의 삶이 된다”며 “고된 역사를 살아온 우리 부모님들의 아픔을 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간 불교계를 포함한 종교계에서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해 8월 민추본을 비롯해 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 위해 발족한 ‘공동행동’ 모임을 통해 향후 활동을 펼쳐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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