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마지막 유마경

만해스님 지음
어의운하

 

만해가 보여준 최후의 안목과 필력

<유마경>은 스님이 아닌 재가자의 신분으로 부처의 반열에 오른 유마거사의 언설과 행적을 모은 경전이다. 유마경의 백미는 유마거사가 병석에 누운 일이다. 문병을 간 문수보살이 아픈 이유를 묻자 그는 “일체 중생이 병들고 이런 까닭으로 내가 병들었거니와 만약 일체 중생이 병들지 아니하면 곧 나의 병도 없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는 교계의 명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억압당하는 겨레를 구하려 했고 낡은 불교의 개혁에 온몸을 바친 만해스님의 일생은 곧잘 유마에 비견된다. 당신이 입적하는 날까지 <유마경> 번역에 매달린 까닭도 유마의 마음을 늘 고민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해의 마지막 유마경>은 만해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한글 번역 경전이란 점에 의의가 있다. 필생의 역작이었던 시집 <님의 침묵>과 논설문 <조선불교유신론>은 널리 알려진 바다. 기록에 따르면 만해는 1933년 유마경을 처음으로 번역을 시작했다. 400자 원고지로 148장 분량의 육필 원고로 진행됐다. 다만 미완성이란 점이 아쉽다. 만해가 정리한 내용은 <유마경>의 절반까지였다. 못 마친 역서의 공식 발표는 집필 한참 뒤인 1940년 잡지 <불교>지 2월호를 통해서다. 이마저도 2회를 끝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재는 중단됐다. 빛을 거의 보지 못하고 묵혀져 있던 원고를 출판사가 발굴했고, 삼일절 100주년에 즈음해 만해가 보여준 최후의 안목과 필력을 소개하고자 기획했다.

책은 잡지 <불교> 1940년 2월호와 4월호에 실린 ‘실우(失牛, 만해의 필명)의 ’유마힐소설경강의‘와 400자 원고지 총 148장 분량의 육필 원고를 모아 발간한 <한용운전집> 제3권(신구문화사, 1973년)에 실린 <유마힐소설경>을 저본으로 했다. 알다시피 만해는 ’님의 침묵‘으로 대변되는 근대의 대표적인 문장가다. 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스스로 <불교대전>을 편집할 만큼 눈 밝은 강백(講伯)이기도 했다. 시인이나 독립운동가로서의 만해는 빈번하게 들었다. 책에선 불교학자로서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
- 고난의 칼날에 서라

한양대 불교학생회 동문회 편저
맘에드림

칼날 같던 기백을 돌아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만해 한용운의 일화와 생애 그리고 생전에 남긴 글들을 엮었다. <만해 한용운-고난의 칼날에 서라>. 책의 제목처럼 만해는 그야말로 칼날이라 불러도 족할 만한 현실을 걸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당당한 선승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고 비로소 그 자신이 빛나는 칼날이 되었다.

생애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였다. 만해 한용운은 일관되게 강직한 태도로 일제의 침략과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조선총독부가 꼴 보기 싫다며 집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심우장). 책은 벽창호라 할 만큼 지독했던 그의 기백에 초점을 맞췄다. 3·1 운동 거사 직후 자신과 함께 투옥된 민족 대표들 중에서 처벌을 당할까 두려워 우는 자들이 있었다. 만해는 감방의 오물통을 집어 들어 그에게 사자후를 날린다. “이 비겁한 인간들아! 울기는 왜 울어! 나라 잃고 죽는 것이 무엇이 슬프냐? 이것이 소위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는 민족대표의 모습이냐! 그따위 추태를 부리려거든 당장에 취소해 버려라!”

일제의 말기는 희망의 말기이기도 했다. 결국 1919년 만세를 불렀던 민족 대표들조차 하나둘 변절하며 친일행위에 가담했다. 만해는 독립선언서를 썼으나 훗날 일제로부터 중추원 참의라는 벼슬을 받았던 육당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그리고 육당이 인사를 하자 만해는 철저히 외면했다. “내가 아는 최남선은 이미 죽어 장송했소,” 현실과 일절 타협하지 않은 대가는 가난하고 비참했다. 그러나 이는 훗날 정의와 양심의 화신이란 평가로 보상받는다.

책에 수록된 논설에선 산중에 은둔한 승려가 아니라 역사와 함께 했던 보살이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특정한 문인이나 역사학자가 아니라 대학의 불교학생회 동문회가 저자라는 점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한양대 불교학생회 동문회는 대학에서 했던 신행활동을 졸업 후에도 꾸준히 이어가는 동시에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에 다시 의기투합했다.

 

용성 평전

김택근 지음 불심도문 스님 감수
모과나무

역경(譯經)과 정화(淨化)의 시작, 용성

“아수라장을 불국토로 만드는 일, 그것은 그나마 나라가 있어야 가능했다. 나라가 없으니 백성의 눈물이 강을 이뤄도, 그 강물이 흘러갈 곳이 없었다.”

용성스님 역시 3·1운동을 주도한 불교계의 선각자였다. 3·1운동으로 촉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이후에도 일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근대불교사에서 ‘용성’이란 이름은 빼놓을 수 없다. 역경(譯經)의 초조(初祖), 선농(禪農)의 초조, 정화(淨化)의 초조라 부를 만큼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앞장섰으나 그 위상은 우리의 역사에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은 편이다. <용성 평전>은 스님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이다.

용성스님은 조선의 억불과 일제의 만행으로 이어진 시련 속에서 한국불교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올곧게 지켜낸 인물이다. 삼장역회를 만들어 한문 일색의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홍포하며 역경불사를 견인했다.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풍금을 치면서 찬불가를 보급한 일은 당시로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어머니들이 참선 수행할 수 있도록 사찰에 부인선원을 개설한 점도 그렇다.

평전에는 민족과 불교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스님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겼다. 책을 쓴 김택근 작가는 전기(傳記) 작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평전을 써서 유명해졌다. 최근엔 성철스님의 일생을 정리한 <성철 평전>으로 불교계에 이름을 알렸다. <용성 평전>은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도문스님의 감수 아래 진행됐다. 스님은 용성스님의 상좌인 동헌완규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래 70여 년을 용성조사(祖師)의 유훈 실현에 헌신했다.

 

25+10=X

신지견 지음
불교신문사

 

‘범종소리…’ 본지 연재 장편소설

불교신문에 ‘범종소리 우주를 깨우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용성스님의 삶과 자취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허구적 요소가 가미됐으나 용성스님이 생존하던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배경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일제강점기 스님들의 봉기를 주도하고 불교정화와 대중화에 앞장섰던 스님, 상해임시정부와 만주독립군을 물심양면 도왔던 스님, 불교를 믿었던 윤봉길 의사를 김구 선생에게 보내 거사를 진행한 스님, 중국으로 가서 장제스와 마오쩌둥에게 독립운동 지원을 요청하고 무장투쟁까지 준비한 스님 등 민족의 독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용성스님의 생애가 한눈에 들어온다.

민족의 자강뿐만 아니라 불교의 자강에도 힘쓴 스님이다. 초인적인 힘과 지혜로 수많은 한문경전을 한글화했던 역경불사, 대각(大覺) 사상의 전법, ‘하루 일하지 않았으면 하루 일하지 않는다’는 백장청규의 실천, 어린이 찬불가 보급과 일요학교 설립 등 수많은 포교업적도 자세히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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