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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된다"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 영혼을 깨우는 선승들의 일화 301

최성현 지음
불광출판사

호랑이가 가죽을 남길 때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말로써 자신을 포장하려 하고 지위로써 자신을 입증하려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 올리려는 자들은 그러나 일화(逸話)는 잘 남기지 못하는 법이다. ‘숨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숨어있어야만 빛나는 것이다. 인간 사이의 일들은 타협과 조화로만 이뤄지는 것들이어서, 고집스럽게 밀고나가는 일들은 부딪히거나 엎어지기 쉽다.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의 저자는 “생애 자체가 아름다워야 일화를 남기고, 그 일화가 오래 전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일화는 내가 아닌 남에게서 나온 말들이다. 그리고 내가 뽐내는 일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는 일만이 생명력을 갖게 마련이다. 말없이 몸만 부지런히 움직여 농사일을 하는 저자는 또 말한다. “삶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그에게 일화는 없다.”

일본 선승들이 남긴
아름다운 일화 모음
“져줄 줄 아는 이가 
진정한 대자유인“

일본 선승들의 일화를 묶은 책이다. 그들이 묵묵히 보여준 순정하고 반듯한 301가지 행실을 통해 ‘과연 진정한 불교적인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리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싹을 틔운 선(禪)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에도 퍼졌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국내에선 일본 선불교의 향기를 손쉽게 접할 수 없는 편이다. 이번 신간은 강원도 산골에서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틈틈이 일본어를 번역하는 글쓴이의 이력이 반영됐다. 무엇보다 바다 건너 섬나라의 스님들 역시 수행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음을 일러준다.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는 선승들의 여유로운 기백을 보여주는 책이다

. 책의 제목은 입적을 앞둔 잇큐 선사(一休, 1394~1481)의 일화에서 따왔다. 스승을 잃게 되자 앞날을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그는 편지 한 통을 내어주며 말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열어봐라. 조금 어렵다고 열어봐서는 안 된다. 정말 힘들 때 그때 열어봐라.”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정말 힘든 일’들을 기꺼이 또는 거뜬히 견뎌내는 스님들을 겨누고 있다. 14년 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 리를 걷는 스님, 맨손으로 변소 청소를 하는 스님, 버려진 시신을 거둬 주는 스님, 멀쩡한 얼굴을 불에 지지는 스님, 도둑에게 다 내어주는 스님, 칼 든 무사에게 맨손으로 달려드는 스님, 승려의 위신을 버리고 길거리에서 차를 파는 스님, 거지 무리에 섞여 사는 스님, 가난한 일꾼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온갖 심부름을 다하는 스님, 맨몸으로 호랑이에게 다가가는 스님, 눈 먼 여인을 아내로 맞는 스님, 온갖 모욕을 무릅쓰며 악착같이 돈을 버는 스님, 스스로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스님 등등. 각자의 자리에서 인욕(忍辱)과 뚝심을 실천하는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장엄하다.

본문 전체에 걸쳐 흐르는 코드는 ‘뚝심’이다. 정말 힘든 일을 극복해낸다면 무슨 일이든 능히 이겨내게 마련이란다. 대자유란 결국 어떤 일이든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자 누구에게라도 친절할 수 있는 능력이겠다. “소심한 사람은 소심한 대로 좋다. 좌선을 한다고 소심한 사람이 배짱 있는 사람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소심한 건 나쁘고 배짱 있는 것은 좋다는 그대 생각이 문제일 뿐이다. 소심한 사람은 자상하다. 나쁘지 않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람이 있는 게 좋다. 모두 똑같다면, 예를 들어 모두 배짱이 있는 사람뿐이라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다(47페이지).” 

대자유와 대자비는 형제다. “질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남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수 있는 힘, 이것은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능력입니다. 나이가 들거나 계급이 올라가면, 혹은 세상에 이름이 조금 알려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이 자랍니다. 주위가 늘 자기 비위를 맞춰주다 보면 거기에 물이 들며 저쪽을 생각하는 힘이, 상대편에게 양보하는 능력이 사라집니다. 상대방의 말이 옳은데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받아들이는 능력을 어느새 잃어버립니다(96쪽).”

물론 인생의 길이는 짧다지만 그 무게는 매우 무겁다. 아무리 참고 참아도 아물지 않는 아픔이 적지 않다. 그래도 끊임없이 들고나는 호흡은 ‘웬만하면 죽지 말라’ 한다. 잇큐가 제자들을 감질나게 만든 편지의 내용은 막상 딱 한 줄이다.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일본엔 군국주의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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