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아잔타석굴 벽화에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오취생사륜, 원을 5등분해서
지옥 축생 아귀 인 천 그려
실크로드, 중국, 티베트 ‘전래’
인과응보 깨닫게 하는 방편 

인도 아잔타석굴 17굴의 생사윤회도.

인도 아잔타석굴 가운데 벽화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1굴, 2굴, 16굴, 그리고 17굴이다. 이 석굴들은 모두 아잔타석굴의 제2조영기인 5세기 중반~5세기 말경에 조성되었으며, 아잔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화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17굴은 육아백상본생도, 사위성대신변, 시비왕본생 등 본생도와 불전도가 가득 그려져 있으며 입구에도 비슈반다라(Visvantara)본생을 비롯하여 취상조복, 과거7불과 미륵보살 등이 그려져 있어 그야말로 아잔타벽화의 진수라고 부를 만하다. 

석굴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흥미로운 벽화 한 점이 보인다. 둥그런 바퀴모양의 그림인데, 박락이 심해 상당부분 떨어져 나갔지만 자세히 보니 바퀴를 여러 면으로 구획된 곳에 여러 가지 장면들이 보인다. 밥하는 장면, 식료품을 판매하는 장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 재판하는 장면 등이 보인다. 또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 배를 타는 장면, 슬픔에 잠긴 장면, 칼로 찌르는 장면, 기도하는 장면도 있다. 살아가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다. 이 벽화는 어떤 내용을 그린 걸까. 

이 벽화는 중생이 육도 또는 오도(五趣)에 윤회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생사윤회도 또는 오취생사륜도(五趣生死輪圖)라고 한다. 부처님 제세시 기원정사의 입구 한 면에 오취생사륜도가 그려져 있었다고 하지만, 당시의 그림은 현재 남아있지 않고, 또 인도를 여행하고 기행기를 남긴 법현, 의정, 현장 등의 여행기에도 그런 그림을 보았다고 하는 기록이 없어 오취생사륜도가 실제로 그려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오취생사륜도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라는 경전에는, 부처님이 목련존자가 겪은 오취의 고통에 대해 대중들이 알 수 있도록 절 문의 지붕 아래에 생사륜을 그리라고 하면서 그 형태를 자세히 묘사한 기록이 남아 있어, 어렴풋이나마 그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아잔타석굴 17굴의 생사윤회도를 확대한 모습.

“크고 작은 원을 따라 바퀴모양을 만들어서 그 가운데에다가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을 위치시키고, 다음에는 다섯 개의 바퀴살을 그려서 오취의 형상을 표시하여라. 바로 바퀴통의 아래에다가는 지옥을 그리고, 그 양쪽 가에다가는 축생과 아귀를 그리고, 그 윗쪽에는 인간과 천상을 그려라… 생사륜의 바퀴통이 있는 곳에다가 흰색으로 원을 만들어서 가운데에다가 불상을 그리되 불상의 앞에는 마땅히 세 가지 모양을 그려야 한다. 처음에는 비둘기의 모양을 그려서 탐욕[貪染]이 많은 것을 표시하고, 다음에는 뱀의 모양을 그려서 성내는 마음(瞋)이 많은 것을 표시하고, 다음에는 돼지의 모양을 그려 어리석은 마음(愚癡)이 많은 것을 표시하도록 하라. 

생사륜의 바퀴테가 있는 곳에다가는 마땅히 물을 대는 바퀴의 모양을 만들고 물 두레박을 여러 개 배치하여 유정들이 나고 죽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라… 원의 둘레에다가는 다시 십이인연으로 나고 죽는 모양을 그릴 것이니 … 그 바퀴의 위에다가는 마땅히 무상대귀(無常大鬼)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길게 두 팔을 늘어뜨리고 생사륜을 끌어안고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인도 아잔타석굴 제17굴.

즉 오취생사륜은 원을 5등분하여 각 부분에 지옥·축생·아귀·인·천 등 오취(오도)의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수레바퀴형의 가운데를 구분해서 아래에 지옥, 그 양 옆에는 축생과 아귀, 위에는 4주(洲)로 나누어진 인간과 천을 그리고, 바퀴통 가운데에는 불상과 탐·진·치를 상징하는 비둘기·뱀·돼지를, 바퀴테 부분에는 수차(水車)의 동작으로 오르내리는 유정(有情)을, 또 바퀴의 주위에는 십이연기(十二緣起)의 무명(無明) 이하 노사(老死)에 이르는 각 과정을 상징하는 12개의 생멸의 모습을 그리고, 바퀴 위에는 무상대귀(無常大鬼)가 생사륜을 품고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부터 오취생사륜도가 그려졌다고는 믿을 수 없다 해도, 위의 기록에 이어 한 장자의 아들이 죽림원에 갔다가 절 문 아래에 이르러 오취생사륜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하여 물으니 비구가 오취 각각에 대하여 설명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기원정사를 비롯한 초기 인도 사원에는 대개 사찰의 문 입구에 오취생사륜을 그렸으며, 그곳에 비구를 상주시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생사의 인연을 설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티베트의 생사윤회도, 연대 미상이며, 화정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아잔타석굴 17굴 정면 회랑의 왼쪽 벽 윗부분에 그려진 오취생사륜도는 현재 박락이 심하여 아래쪽의 지옥과 아귀, 부분이 없어졌지만, 경전에서 인용하고 있는 오취생사륜과 흡사한 모습이다. 또 그것이 그려진 위치도 사찰벽면의 측면이라는 점에서 기록과 일치한다. 다만 바퀴 안을 5등분하여 각 부분을 오취에 맞추었다고 한 경전의 내용과는 달리, 8등분하여 4주의 각각에 인계(人界)를 한 구획 배당하고 있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인도의 생사윤회도는 불교의 동점과 함께 실크로드, 중국, 티베트 등으로 전래되었다. 투르판의 베제크릭(Bezeklik) 석굴의 제8사원 본당벽화(9-10C)는 경전에서 언급한 마차바퀴형(車輪形)은 아니지만 하단에 지옥의 여러 고통, 상단에 오도가 그려져 있는데, 중앙 상부의 천상도 부분은 결여되었으나 향우측에 인간도와 축생도, 향좌측에 아수라도와 아귀도가 남아 있다. 

또 실크로드 남로에 위치한 호탄(Khotan) 라와크(Rawak)의 대다수 사원 입구에는 사천왕, 수미산도와 함께 생사윤회도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중국 사천성에 위치한 대족석굴에는 남송대의 생사윤회상이 남아있다. 이 상은 보정산 대불만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호법상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높이가 무려 7.8m에 이른다. 무상대귀가 정면을 향해 양손을 벌려 생사륜을 안고 입으로 생사륜의 상단을 물고 있는데, 바퀴는 6등분하여 위쪽에 인·아수라·천, 아래쪽에 아귀·축생·지옥을 표현하고 바퀴 가운데에는 불상 1구와 탐·진·치를 상징하는 비둘기·뱀·돼지를 배치하였다. 

육도 밖의 원은 모두 18구획으로 나누어 천상도 위에서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12인연을 배치하고 바깥쪽의 원에는 사람과 동물 등이 윤회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과 동물이 원통형 안에서 빠져 나오는 모습으로 삶과 죽음의 모습을 상징한 점이다. 이 생사윤회상은 도량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 인도에서 처럼 도량을 참배하러 온 신도들이 생사윤회도를 보고 인과응보의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 같다. 

중국 사천성 대족석굴의 생사윤회상.

티베트에는 9세기경 생사윤회도가 전래된 이후 탕가(Thanka)와 판본으로 수많은 생사윤회도가 조성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티베트 사찰 입구의 벽면에는 거의 빠짐없이 생사윤회도가 그려져 있다. 화정박물관소장 생사륜회도는 푸른색의 무상대귀가 손과 발로 큰 바퀴, 즉 생사륜을 감싸고 있는데, 바퀴의 안쪽에는 비둘기·독사·돼지가 서로 꼬리를 물고 돌고 있다. 위에서부터 천·인·아귀·지옥·축생·아수라의 육도가 표현되었는데, 천상도는 바다 위에 솟아있는 전각 위에 부처가 가부좌하고 앉아있는 모습, 아수라도는 성의 군사들이 하늘 위 구름 속의 군사들을 향하여 화살을 쏘는 모습, 인간도는 밭을 갈고 승려에게 법문을 듣고 가축을 방목하는 모습 등, 축생도는 갖가지 짐승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지옥도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염라대왕이 앉아 망자들을 심판하는 모습과 8열지옥, 8한지옥에서 망자들이 벌을 받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원의 가장자리에는 위쪽 중앙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12인연이 묘사돼 있다. 

생사윤회도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고려시대의 <화엄경> 변상 중의 생사윤회도 외에 독립된 그림을 찾을 수 없다. 호림박물관소장 <고려화엄경> 사경(14세기) 권37 변상도에는 무상대귀가 커다란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전형적인 생사윤회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엄경>에 생사윤회도를 그린 것은 십이인연의 도리를 밝히고 중생이 윤회하는 근본을 파헤쳐서 무위진여(無爲眞如)의 세계가 바로 앞에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일게다.

생사윤회도는 왜 바퀴모양일까. 아마도 굴러가듯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끊임없이 생과 사를 반복하며 살고 있으며, 인간의 윤회전생 또한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업력에 의해 끊임없이 돌고 돈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불교신문3466호/2019년2월27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