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을 선지식으로 만들겠다” 발원

2월14일 오후에 찾은 대전 광제사. 주지 범우스님이 신도들에게 <법화경>을 강의하고 있다. 1985년 창건된 광제사는 대전의 대표적인 시민포교도량이다.

‘탈(脫)종교화’란 사람들이 종교로부터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과학의 끝 모를 발달로 인해 과거 종교가 제시하던 가르침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정확한 해답을 과학이 가르쳐주고 있다. 거듭되는 세속화로 개인들은 성스러움에 그다지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삶 속에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사찰을 찾을 시간도 없고 찾는다손 매력이 없다고 푸념하는 현대인들이다. 출가자 감소 또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또한 인생의 의문과 고통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위로해줄 스님들이 줄어들고 있다.

알다시피 법회 참석인원의 절대다수는 나이 든 여인들이다. 그나마 종교를 열심히 믿었던 옛사람들의 남아있는 신심으로 절들은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작년 4월 대전 광제사 주지로 부임한 범우스님의 화두도 ‘불교의 노령화와 박제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유럽의 대형성당조차 일요미사에 고작 10명 남짓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전부 호호백발 노인들뿐이다. “의례로서의 불교에만 머무른다면 길어야 20년 안에 모든 사찰이 동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크다. 대안은 ‘수행(修行)’ 불교다.

경전공부가 불교의 저력
기도정진으로 ‘신심’ 고양
300회 맞은 경로잔치
지역의 축제로 발돋움

광제사(廣濟寺)는 1985년 대전시 동구 자양동에 창건됐다. ‘널리 중생을 제도하겠다(廣濟)’는 서원을 품은 절이다. 전임 주지 경원스님의 도심포교 원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주택가에 인접했으며 지척에 대학캠퍼스가 있다. 사람들이 사찰과 가까워질 수 있는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예전만큼 인구가 복작이진 않는다. 지난 14일 찾은 광제사, 평일 오후이어서 절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다만 법당 안은 인기척으로 가득하다. 20명 남짓한 신도들의 손에는 대승불교 핵심경전 가운데 하나인 <법화경>이 들려있었다. 주지 범우스님이 열강 중이다. 함께 소리 내어 읽고 스님의 설명을 경청하면서 일체중생이 예외 없이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만인성불론’을 익혀간다.

법화경 강의는 매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된다. 저녁에도 똑같이 2시간씩 꼬박꼬박 한다. 광제사를 대전의 ‘경전전문학교’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신도가 스님의 법문을 듣는 모습은 일상적이고 자못 낡은 풍경이다. 하지만 광제사에선 ‘최신식’이 되기도 한다. 모든 강의를 그때그때 ‘유튜브’ 공간에 올리기 때문이다. 절에서나 집에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휴대폰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일요법회와 초하루법회와 각종 재일(齋日) 법회까지 한 달에 10번 이상 법문을 해야 하는 게 주지 스님의 임무다. 바쁘고 버겁지만 조회 수가 차츰 늘어나고 격려의 문자가 올 때마다 의욕은 커진다. “제사와 의식으로 그저 ‘부처님을 받드는 것’이 아닌 ‘스스로 부처님이 되자’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오래고 깊은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인 ‘경전학당’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광제사 경로잔치에 참석한 어르신들.

<금강경>도 <법화경>만큼 훌륭하다. 부처님이 깨달은 공(空)의 의미를 간략하고 명쾌하게 해설한 경전으로 정평이 나 있다. 광제사는 법화경 강의와 함께 금강경 독송으로 새로운 수행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금강경 7독 3년 정진기도.’ 말 그대로 금강경을 매일 일곱 번씩 3년을 읽는 대장정이다. 지난해(2018년) 11월13일 입재했으며 2021년 10월16일에 회향한다. 날마다 오전 5시, 오전 10시, 오후 7시가 되면 광제사 법당은 독경소리로 무르익는다. “망자들의 제례와 관련한 <천수경>은 만이들 읽으시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르치는 <금강경>과는 친숙하지 않은 것이 한국불교 신행의 단면”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돌아가신 분들을 잘 보내드리는 것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대전 동구 주택가에 위치한 광제사.

광제사 신도들이 공부하는 <법화경>에는 ‘오종(五種) 법사’라는 개념이 나온다. 부처님은 “경전을 받아서 가지고(受持), 읽고(讀), 외우며(誦), 풀어서 말하고(解說), 써서 베끼는(書寫) 것은 법사(法師)의 수행으로서 가장 거룩한 일”이라며 “보살행의 제일 중요한 수단”이라고 설한다. 무엇보다 괄목할 가르침은 “덕망 높은 큰스님이 아니라 이 오종을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이라는 격려다. 불교의 미래를 밝히려 오종법사를 대거 키워내는 광제사의 목표이기도 하다. “사찰의 성패를 가르는 건 끊이지 않는 독경소리와 기도소리”라는 게 범우스님의 지론 속에 목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스님이 부지런해야 신도들이 믿고 따른다”
광제사 주지 범우스님

범우스님<사진>은 10대 시절 이미 반쯤은 출가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1년간 절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출가하기 전 광제사불교대학에서 공부했던 인연으로 지금 주지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물론 스님이란 신분은 늘 자랑스럽고 벅차지만, 스님으로서 처한 현실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대학 다닐 때 내가 발 벗고 나서서 눈물겹게 만들어낸 학생회와 청년회가 속절없이 사라지는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시류를 내가 통제할 수는 없다. 결국 “나부터 잘하자”는 다짐이다. 항상 절에 머물러 신도들이 언제나 필요할 때 만날 수 있고, 오롯한 기도정진으로 스스로 불교의 불을 밝히는 주지(住持)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광제사는 공부를 시키는 포교만큼이나 마음을 위로하는 포교에도 열심이다. 매월 25일은 마을 어르신들의 잔칫날이다. 광제사 경로잔치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도 빠짐없이 열렸다. 특히 지난 1월 300회를 채우면서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다. 승합차로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노인 150여 명을 직접 모셔와 음식을 대접하고 공연을 선보인다. 무릎이 좋지 않은 노인들을 위해 법당에 교회식 의자를 배치한 점에서도 세심한 배려가 묻어난다. 기독교를 믿는 어르신이라도 이날은 부처님 제자다. 종교를 따지지 않는 마음 넓은 자비 덕분에 광제사 경로잔치는 대전을 대표하는 지역축제로 성장했다.

과제는 젊은이들도 ‘모셔오는’ 일이다. “신행도 결국은 기획”이라는 게 범우스님의 지론이다. 서울 봉은사 교무국장으로 일하며 ‘유아수계법회’로 가족포교의 세 장을 열었다는 게 남다른 자부심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했고 집에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관해 부지런히 고민한다. “불자로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함께 모여 부처님 법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라며 경전학당의 성공에 한마음으로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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