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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통 살아 숨쉬는 ‘꿈이 이루어지는 도량’서울 흥천사와 수제기와 생명 불어넣으며 전통미 잇는 김창대 제와장
600년 역사를 간직한 흥천사가 도량 정비 불사를 통해 균형과 조화,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생태공간으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쓴 흥천사 현판.

서울 돈암동 삼각산 기슭에 자리잡은 흥천사(興天寺)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7년(태조 6년)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왕실 원찰이다. 170여 칸에 이르는 대가람에다가 조선불교의 총본산격인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로 지정되는 등 억불숭유정책의 조선시대에서도 왕실의 지원과 장려를 통해 한국불교의 법통을 꿋꿋이 지켜왔다. 하지만 조선중기부터 왕실의 지원이 줄어들고 2차례의 큰 화마를 입으면서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시대부터 다른 종단 스님들이 자리 잡은데다가 주민들이 사찰 토지를 점유해 사는 등 600년 동안 이어온 법등이 꺼질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흥천사는 2011년 10월21일 통합종단 출범 반세기만에 조계종 품으로 돌아오면서 중흥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흥천사는 부처님의 가피로 온 세상을 흥하게 하고(新興天下), ‘꿈을 이루어주는 도량’으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조선 초 왕실 원찰로 창건

보물 1점 서울시유형문화재 20점
국가등록문화재·문화재자료까지
한국 전통 간직한 ‘문화의 寶庫’

가족 중심 신행프로그램과
연2~5회 경로잔치 등으로
‘강북권 거점사찰’로 우뚝

한옥식 어린이집 개원 이어
극락보전 대방 해체복원 등
대작불사로 사격 일신하다

내년말 문화센터 건립하면
지역 대표 문화도량 될 터

2011년 6월 흥천사 주지로 부임한 금곡스님(현 흥천사 회주)은 곧바로 사찰 정상화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찰 토지를 점유한 22가구, 80세대의 주민들과 원만 합의를 통해 이주시켰다. 주지 부임 후 2년 여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흥천사는 종단 공찰로 새롭게 거듭났다.

하지만 사찰 제반 여건은 녹록치 않았다. 사찰운영권을 넘겨받은 뒤 거행한 첫 번째 초하루법회의 동참자는 단 2명에 불과했다. 지난 50년간 미입주사찰로 제대로 된 개보수 조치가 없었던 데다가 인수인계시 종무소에는 책상은커녕 볼펜 한자루 조차 없을 만큼 모든 게 열악했다. 하지만 화마로 소실된 양양 낙산사를 원형 복원한 경험을 갖고 있던 금곡스님은 “‘모든 일을 발원하면 흥하게 일어난다’는 흥천사에서 기도하면 모든 게 이뤄지는 꿈을 이루어주는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갖고 정상화를 위해 매진했다.

곧바로 도량 곳곳을 말끔하게 정비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중심의 신행프로그램 운영과 불교대학 운영, 연2~5회 경로잔치 개최, 이웃돕기 성금 연간 4000만원 성북구청 전달, 연간 2000만원 장학금 지원, 경로당 후원, 24시간 통행로(지름길) 개방 등을 통해 불자는 물론 지역민의 마음을 움직여 나갔다. 이를 통해 채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신도들과 같이 기도와 원력으로 도량을 변화시켰다.

흥천사 총불사도감 금곡스님은 도량 정비 불사를 통해 균형과 조화,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생태공간으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고 있다. 흥천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한 흥천어린이집은 서울시 최초의 전통 한옥식 어린이집이다. 흥천어린이집은 85명을 정원으로 지난 2015년 6월 개원했다. 전통사찰 경내에 위치한데다가 친환경적인 한옥 교사(校舍), 정서순화와 생명존중을 강조한 교육철학 등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해 대기자가 끊이지 않을 만큼 인기가 높은 보육시설이다.

흥선대원군이 직접 시주하고 모연해 현판 편액까지 쓴 ‘대방(국가등록문화재 제583호)’과 보물 제1891호 ‘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을 모신 ‘극락보전’은 지난해 11월 해체 보수 불사를 회향함으로써 장엄한 제 모습을 되찾았다. 특히 흥천사 대방 해체 보수불사는 1960년대 흥천사 사진이 대거 발견된 데다가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법당과 선방, 누각 등 대방의 원래 기능을 최대한 살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목재 기둥과 보 등 주구조재를 60% 이상 재활용하되 상층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수제기와’를 사용했다. 수제기와를 사용한 것은 기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기울어진 극락보전 때문이다. 극락보전은 전면에는 무거운 BS기와(기계식 비규격 기와)를, 후면에는 가벼운 수제기와를 사용함으로써 무게 균형이 무너졌다고 진단됐다.

대방 보수 불사 설계도에는 KS기와(기계식 규격 기와)를 올리기로 계획돼 있었지만 무거운 중량을 버티기 힘든 기존의 주구조재를 재활용하기 위해 전문가 자문과 문화재청 승인을 거쳐 KS기와보다 약25% 가벼운 수제기와를 전부 올렸다.

숨을 쉬는 수제기와를 올리면서도 강회다짐 없이 보토다짐 위에 기와를 바로 올려 무게를 훨씬 줄임으로써 주구조물에 부과되는 하중을 줄였다. 새로 들어가는 목재를 치목할 때도 기계가공 없이 인력가공 방식으로 바꿨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겠다는 원력으로 인해 공사비 상승과 불사기간 6개월 지연 등의 불이익도 모두 감수했다.

한 방송사에서 시공상 편의를 위해 대방을 백시멘트로 땜질 보수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반박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백시멘트를 사용한 것은 시공 편의보다는 문화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전통재료의 물성(物性)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가능하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복원사업에도 시멘트 등 현대재료를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지정문화재’가 아닌 ‘등록문화재’인 흥천사 대방은 전문가 자문회의와 수리 기준 및 원형보수 규정에 따라 원형 그대로가 아닌 문화재에 남아 있는 여러 시대의 흔적에 따라 보존 가능하다. 특히 1960년대 흥천사 사진에서도 시멘트를 사용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해제 과정에서도 시멘트가 폭넓게 사용됐음이 확인된 만큼 벽체를 생석회와 진흙을 바탕으로 시공하되 마지막으로 보강재로 백시멘트를 사용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벽체 해체 시 싸리나무와 수수대, 대나무 등이 나왔지만 전통방식에 맞춰 싸리나무와 수수대로만 복원했다. 대방의 연탄 난방으로 변형된 바닥을 구들 유구에 따라 전통 온돌로 복원하면서도 바닥 난방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연탄 난방 유구도 일부 보존했다.

앞부분이 최대 20cm 침하돼 앞으로 기울어진 극락보전은 ‘한식드잡이’ 방식으로 해제 절차 없이 건물을 바로 세웠다. 침하된 부분을 목재로 보충하고 KS기와 대신 수제기와를 올려 무게 불균형 문제도 해소했다.

또한 흥천사는 지역주민들의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문화센터 건립 불사를 진행중이다. 내년 연말 문을 여는 문화센터는 불자와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법회와 강연, 공연 등을 열 수 있는 법당과 강의실, 북카페는 물론 1000여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후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600년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흥천사는 불자에게는 정신적 귀의처로, 주민들에게는 언제든지 찾아와 힐링할 수 있는 쉼터로 거듭나며 꿈을 이루어주는 열린 도량으로 사격을 공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이같은 흥천사의 변화의 물결은 흥천사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 일체의 토지 매각 없이 전통사찰을 보존하겠다는 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행정력과 지역주민을 관세음보살처럼 극진히 모시라는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설악 무산스님의 원력에서 시작됐다. 여기에다가 화재로 소실됐던 낙산사를 원형 복원한 흥천사 회주 금곡스님의 추진력, 부처님 가르침을 앞장서 배우고 실천하는 흥천사 신도들의 남다른 신심 등이 맞아 떨어져 일군 값진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드잡이방식으로 복원한 극락보전 모습.
해체보수불사를 마친 대방.

■ “부처님 집에 올리는 기와…신바람 납니다”

수제기와 생명 불어넣으며 전통미 잇는 김창대 제와장

수제기와(암키와)를 만들고 있는 김창대 제와장.

“사찰의 기와는 전통방식으로 흙을 구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멀리서 지붕을 보면 은회색을 띄고, 건물이 전반적으로 은근하면서도 차분한 기운이 돌아 수행하기 좋은 도량이 됩니다.” 전남 장흥에서 조선시대 전통기법으로 수제기와를 제작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製瓦匠) 전수조교인 김창대(48) 조선와요 대표는 “기와가 빗물을 막고 건물의 부식을 방지할 뿐 아니라 건물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가 말하는 전통기와(수제기와)의 은회색은 기와를 굽는 가마에서 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연’을 먹어 생기는 색이다. 스님들의 승복 빛깔과 같지만 색이 일률적이지 않고 불의 온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와야 좋은 기와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조선시대 수제기와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기와의 폭과 길이가 건물의 쓰임새뿐 아니라 지역과 제와장의 개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이어 “기계기와는 검은색으로 크기가 일률적이지만 수제기와는 건물의 쓰임새와 건물이 자리한 지형을 먼저 살펴 기와의 크기와 형태를 정한다”고 말한다.

숭례문·흥천사에도 수제기와

해체보수 불사엔 25% 가벼운
수제기와를 올려야 기둥 등
구조물 변형 막을 수 있어

한옥 건물은 지붕 무게에 민감하다. 지붕처짐 현상은 물론 건물이 기울어지는 현상은 대부분 기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제기와는 기계기와에 비해 무게가 25%가량 가볍다. 특히 신축불사가 아닌 해체보수 불사의 경우에는 기존 기둥과 보 등 주구조물이 높은 하중에 취약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수제기와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수제기와는 수분 흡수율(9~12%)이 높아 비가 오면 빗물을 흡수하고, 날이 맑으면 물을 배출해 통기성이 좋다. 이처럼 수제기와는 지붕이 일정한 수분을 유지하도록 하여 지붕이 뽀송뽀송하게 한다.

수제기와는 흙을 선별하고 반죽, 성형, 건조, 굽기 등 15~17개의 공정을 직접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조선시대 전통기법의 수제기와는 2013년 타계한 고(故) 한형준 제와장(製瓦匠)이 유일하게 맥을 이어왔다. 현대화 기계화시대에 고된 작업으로 전통기법이 끊길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김 대표가 이어가고 있다. “수제기와의 절정은 가마의 불을 다루는 것입니다. 1998년 처음 스승님을 찾았을 완벽하게 불 다루는 모습에 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김 대표는 부산에서 공무원으로 도자기 실기강사를 하고 있었다. 전국기능 올림픽 도자기부문에서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불 다루기에 나름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혈기왕성했던 김 대표는 한형준 제와장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스승 밑에서 불 다루기만 꼬박 15년 가까이 연마했다.

수제기와는 많은 공정을 일일이 사람의 손과 발로 해야 한다. 5명이 일주일에 암키와 450매 가량 성형을 한다. 제품으로 완성되기까지는 날씨에 따라 35~40일 가량 걸린다. 작업의 어려움보다 힘든 것은 비싸다는 이유로 수제기와를 찾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수제기와의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있다. 숭례문 복원불사에서 기와의 절반을 조선와요에서 수제기와로 만들어 올렸다. 또한 서울 흥천사가 흥천사 극락보전과 대방, 문화센터 불사를 위해 수제기와 3만5000장을 주문했고 지난해 수제기와를 모두 전했다. 사찰과의 인연은 계속되어 지금은 안성 청룡사(보물 제824호) 기와를 작업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따라 절에 가서 불공드린 공덕입니다. 정말 힘든 시기였는데 부처님 일이 들어온 것입니다.”

가마에 불을 넣을 때 간절하게 ‘옴 마니 반메 훔’ 정근을 한다는 김 대표는 “부처님 집에 올리는 기와를 만들게 되어 신바람 난다”며 미소 지었다.

사진 왼쪽부터 흥천사 대방 해체보수 불사에서 나온 수제기와와 BS기와, 최근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KS기와, 흥천사 새 수제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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