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6>제법무아(諸法無我)

‘나’는 내 생각 속에서만 존재
오온의 경험 심리적 현상 불과
진리로 착각하면 고통에 빠져

나에 대한 집착(아집, 我執)이 사라지면 나의 것(아소, 我所)에 대한 집착(법집, 法執)도 모두 사라져 모든 고통의 원인이 사라지게 된다. ‘나’가 없는데 나의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없애는가가 바로 고통을 없애는 관건이라고 볼 수 있고, 불교의 모든 종파는 여기에 온힘을 기울인 것이다. 

첫째로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이다. 불교는 무아(諸法無我)를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존재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 이유는 “나라는 것”이 “나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인 정보들, 그것들을 느끼는 느낌들, 그것들을 생각함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욕망하는 것들이다. 이와 같은 식수상행의 정신적인 작용들은 연기적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인식론적인 인과관계의 상태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이것들을 ‘나’라고 착각하고 “나는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마치 선풍기의 5발이 너무도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원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러므로 “나라는 믿음”은 가상의 실재 (virtual reality)이다. 오직 인간의 개념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은 5가지 감각기관들(色)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들(識), 느낌들(受), 이들을 생각함(想), 그리고 그것들을 잡아당기고 밀쳐내는 욕망들(行), 그것들에 의지해서 발생하고 변화하는 물질들(色), 이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끊임없이 상속하고 생성(bhava; 有)해 나가는 과정들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정체이고 나의 실재이다. 이런 관점에서 무아라고 하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상속 외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라고 하는 믿음은 선풍기가 돌아갈 때 원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원이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보인다는 것이지 실제로 원이 있다는 것은 아닌 것이다.(諸法無我, 五蘊自性皆空) 

이렇게 본다면 경험되어지는 오온이 나이고 오온밖에는 내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오온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는 않는데 경험을 하는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경험적 실재’가 꼭 ‘존재론적 실재’라고 할 수 있는가이다. 잘못된 믿음도 실재와 똑같은 결과를 주는 것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길을 걷다가 노끈을 뱀으로 잘못 착각해서 심장병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믿음은, 원인은 사실이 아니지만 결과가 사실이 되는 것이다. 오락에 너무 열중해서 건강과 공부를 해치는 소년에게 오락은 행복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바른 지식을 갖게 되면 변해질 ‘착각의 감정’인 것이다. 중증당뇨인 사람이 단 음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믿음과 느낌들은 ‘경험적 실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은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발생한 믿음이므로 실재라고 할 수 없고, 오직 경험적 측면에서만 실재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오온의 경험도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사실이다.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고 믿음에 의해서 발생한 하나의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이것들을 객관화해서 실재이고 진리라고 착각하여 일반화하면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절대적 진실이고 실재인가. 절대적 실재라는 것은 보편타당성을 획득해야 한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자명(自明; self evident)함이 있어야 한다. 주관성을 배제해야만 하고 개인적인 감정, 또는 업, 습관을 배제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을 배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오직 무위의 열반밖에. 열반만이 진실이고, 그 외의 것은 진실이 아닌 것이다. 오온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오온에서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 다시 말해서 오온에 대해서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것, 그것이 바로 열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진실 혹은 실재는 경험적 실재와 절대적 실재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초기불교는 경험적 실재를, 대승 특히 중관학파와 선종은 절대적 실재를 실재로 인정한다.

[불교신문3465호/2019년2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