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를 가지시고 걸식을 하시는데
중생을 복되게 함은 거칠거나 고움이 없으며
보시하는 집에는 주원(呪願)을 하시어
세상마다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십니다.
- <불설보요경 29권>


집 한 채 짓지도 못하는 묵정논에 구덩이를 파놨더랬다. 말뚝 하나 박을 참이었다. 무른 밭 땅심에 박은 말뚝 위로 전깃줄을 걸고 비닐하우스 토굴에 앉아 세상의 소리와 그대의 소식을 듣고자 했다. 그곳에 물이 고이고 여름이면 개구리가 놀았다. 달이 눈여겨보다가 밤치장을 하곤 하였다. 별이 철러렁 외출을 불안해하기도 했다. 낙엽이 날아와 바람에 파문을 묻기도 하였다. 말뚝 하나 박을 준비는 마쳤지만 내게서 나갈 익지 못한 말들은 꼭꼭 쟁여두었다. 그대의 의도를 받아들이고 함께 울고 웃을 준비를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 그 자리는 늘 휭하니 비어 있었다. 못 올 기별이나 안고서 말뚝은 웅덩이 곁에 누워 있었다. 그대가 오고 내가 그대에게로 통하는 자리, 꼼짝도 못할 자리 하나에 준비가 더 필요했나보다. 그 편안과 고요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다른 건 어쩌면 다 필요 없었다. 나는 발우 하나 들고 걸식의 길을 나설 준비를 언제 마칠지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불교신문3464호/2019년2월20일자]

도정스님 시인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