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에 가면 나는 가끔 이상해진다. 출입문에 들어서고 먼저 책들이 빽빽이 꽂힌 서가로 가서 서성인다. 조개껍질을 줍는 아이처럼 손이 가는대로 책들을 뽑아들었다가 꽂기를 반복한다. 이윽고 책장을 넘기다가 주위를 살핀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책갈피에 코를 바짝 댄다. 약쟁이처럼 심호흡을 크게 한다. 새 책에선 잉크 냄새가 나고 낡은 책에선 퀴퀴한 먼지 냄새 같은 게 올라온다. 책장의 문장들도 코카인 가루처럼 콧속으로 빨려들어올 것만 같다. 

한 남자와 눈길이 마주친다. 그는 도서관에 평일에도 있고 주말에도 있다. 작년에도 있었고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모른다. 아는 거라곤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책들을 책상에 쌓아놓고 읽는데, 멍하니 앉아있을 때도 많다는 것이다. 나는 초식을 쓰다가 서로의 문파를 알아보는 검객처럼 묘한 감정을 그에게 느낀다. 그대는 아직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려. 그런 당신은? 눈빛으로 일합만 겨뤘는데도 우리는 서로의 유파를 훤히 꿰뚫어본다. 

발길이 문학과 소설 작법서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어딘가 고수들에게만 전해오는 절대무공의 비급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 비급만 손에 넣는다면 강호를 제패하는 건 시간문제다. 날선 욕망 때문인지 일순간 책들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일격을 당해 낭떠러지로 떨어진 패자의 막막한 기분으로 책들의 절벽을 올려다본다. 너무 높다. 탈출로를 찾기 위해 이 책 저 책 펼쳐 문장들을 따라가 보지만, 그 문장은 어김없이 더 많은 문장들을 달고서 개미떼처럼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인간의 기보 16만 건을 익혀 바둑의 신으로 등극한 알파고를 떠올린다. 도서관의 책들을 알파고처럼 머릿속에 저장해 변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면 나도 소설의 신이 되는 건가. 급기야 상상은 영화 속 미래로 달려가고, ‘메트릭스’에서 무술, 총기조작, 헬기조종법을 순식간에 전송받는 네오를 떠올린다. 소설 문장을 탐닉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져든 나는 어느새 영화의 주인공을 부러워하기 시작한다. 

AI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지상의 모든 문장들을 전송받고 싶다. 아, 세상의 글들을 아이스크림처럼 죄다 핥을 수만 있다면. 문재(文才)라곤 없는 중년남자가 갈구하는 도서관에서의 욕망은 시쳇말로 웃프다.

[불교신문3464호/2019년2월20일자] 

김영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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