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죽어야 다음 생이 즐겁다
즐겁게 죽어야 다음 생이 즐겁다
  • 장영섭 기자
  • 승인 2019.02.15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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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스님이 들려주는
초기불교 윤회이야기

일묵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제따와나선원장 일묵스님은 저서를 통해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다음 생의 모습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사진은 인간이 윤회하는 우주법계를 형상화한 만다라. 불광출판사 제공


불교의 전통 생사관
‘윤회’의 원리와 실상
초기불교로 접근 설명

“죽기 직전 내생 보여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항상 경각심 가져야”

죽음은 무섭다. 예외도 없고 에누리도 없다. 죽음에 대한 절대적 공포가 종교를 만들었고 의학을 발전시킨다. 신(神)에게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거나 제사를 지내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인지상정이다. 윤회(輪廻) 역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나름의 상상으로 현생을 계도하고 위로하는 장치다. 인도의 전통적인 생사관이자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의 생사관이다. 으레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나쁜 일을 많이 하면 나쁜 곳에 태어난다’는 1차원적인 교훈으로 윤회를 이해한다. <일묵스님이 들려주는 초기불교 윤회이야기>는 한걸음 더 들어가 윤회의 진실을 보여준다.

일묵스님은 최초 ‘서울대 출신 스님’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96년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을 밟다가 성철스님의 상좌인 원택스님에게 출가했다. 지금은 초기불교 수행의 권위자로 유명하다. 국내외의 여러 사찰에서 정진하며 남방불교 수행법을 익혔다. 이제는 ‘위빠사나’ 등등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법명이다. 지난해 춘천에 수행공동체 제따와나선원을 열며 일가견을 이뤘다.

요즘 유행하는 명상은 마음을 맑히든 마음을 다스리든, 여하튼 ‘행복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묵스님이 죽음 이후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 까닭은 최근에 새로운 화두를 얻었기 때문이다. “제따와나선원을 개원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윤회를 믿지 않는 불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허황된 내세관으로만 치부됐던 윤회가 실은 정견(正見)의 근본이자 배경임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1장은 우리가 윤회하는 세상인 삼계 곧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윤회할 때 각자가 지은 업(業)에 힘입어 삼계의 서른한 가지 세상 중 한 곳에 태어난다. 잘못의 크기와 횟수에 따라 지옥 아귀 아수라 축생 등 악처(惡處)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수행의 목표는 아름답고 달콤한 곳에 태어나자는 것이 아니다. ‘워밍업’ 차원의 1장은 내생의 다양하고 더구나 끔찍한 모습을 명심하고 악처가 아닌 선처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항상 경각심을 갖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2장은 업(業)과 윤회에 관한 내용이다. 흔히 업에 의해 윤회가 일어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업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스님은 업의 역할, 과보를 생산하는 장소, 업이 결과를 맺는 순서와 시기 등 세밀하게 업을 실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게 다 전생의 업 때문’이라는 운명론과 ‘업의 씨앗이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된다’는 실체론을 부정한다.

3장에는 ‘재생연결식’이라는 퍽 생소한 개념이 등장한다. 임종을 맞아 업에 의해 나타는 내생의 첫 의식이다. 죽기 직전에 다음 생에 대해 경험할 수 있다는 매우 신비로운 가설인 셈이다. 우리가 일생동안 지은 업 가운데 가장 뚜렷한 업이 죽음 직전에 업이나 업의 표상 또는 태어날 곳의 풍경 중 한 가지 형태로 의식에 나타난다. 곧 재생연결식을 통해 내생의 자기 모습이 무엇일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4장의 주제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緣起)다. 연기를 이해하면 그릇된 견해를 버리고 바른 견해를 갖추어 궁극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5장은 ‘무아(無我)라면서 어떻게 윤회할 수 있는가’라는 불교학계의 오랜 논란에 해답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는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촛불이 다른 촛불로 옮겨 붙는 것처럼. 스님은 “윤회의 원인을 이해하면 존재들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결국엔 자비심으로 세상을 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이란 ‘연기’에 대한 확신이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첫째 조건은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입니다(95페이지).” 불교적으로 살아야만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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