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동자(南巡童子)’ 길이 열리다

어떤 것을 배웠다고 자만 않고 
‘보살도에 대해서 다 알았다’는 
생각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리… 

문수보살이 복성 장엄당 동쪽에 머물며 법계를 비추는 수다라를 말씀하시니 복성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바새, 우바이와 동자, 동녀가 500명씩 모두 2000명이었다. 문수동자는 선재를 한 눈에 알아봤다. ‘법기(法器)다. 보통의 아이가 아니다. 저 총기와 결의로 불타오르는 눈빛을 보라. 무량한 세월동안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며 공부의 길을 닦아 스스로 법기를 이룬 아이다.’

선재는 어머니 품에 잉태될 때부터 집안에 금은 보배가 쌓이기 시작해 이름을 ‘선재(善財)’라 불렀다.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들께 공양, 예배해 복덕을 닦아 빈곤함을 풍요로움으로 바꾼 결과임을 알아봤다. 흔히 자녀가 출생할 때 부모가 하는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그런 경우다. 전생에 빈곤을 풍요로 바꾸는 길을 이룬 사람이라도 금생에 보시행을 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억지로 하면 다시 빈곤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유한 이들은 그 부유함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부를 축적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그 부를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과 공유, 나누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보시다. 

드디어 선재회가 시작된다. 중생이 부처가 되려는 마음, 보리심을 일으키면 보살이다. 보살의 길에는 신(信), 주(住), 행(行), 회향(廻向), 지(地)의 5위(位)가 있다. 각각 10명의 선지식이 있다. 그러나 신위(信位)의 선지식은 문수 하나다. 

삽화=손정은

<화엄경>에선 10신을 중생의 지위로 보기 때문에 문수동자 하나만 선지식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문수가 선재동자의 근본선지식이 되므로 53선지식에는 포함하지 않고 0선지식이라 한다. 문수동자가 반드시 성불할 것이란 믿음을 지니고 수행하는 까닭에 홀로 10신위를 드러내고 있으며 10주(住)의 첫 번째인 초발심주가 바로 이 10신을 이루어야 얻어지는 자리다. 이렇게 중생의 자리에서 시작하여 보살의 길에서 5위를 닦으며 부처님이 되는 결과까지 보면 전체가 7위로 구분되어 있다. 믿음은 씨앗과 같고, 등, 묘각의 결과는 열매와 같아서 수행의 과정에 넣지 않고 오직 5위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문수동자는 선재에게 부처님이 되는 법, 부처님의 스타일을 갖추는 법, 부처님처럼 중생을 교화하는 법, 부처님처럼 말하는 법, 고통속의 중생들에게 광명을 주는 법, 부처님과 평등해지는 법 등을 들려주었다. 문수동자는 선재가 이런 가르침을 들으며 자신이 전생에 공덕을 지었던 선근과 보리심을 내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샘솟게 하려는 것이다.

선재는 자신의 삶과는 너무 다른 부처님의 삶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스스로 어리석고 교만하여 탐내고 성내는 마음이 많아서 생사 고통의 성 안에 갇혀있음을 느끼고 해탈의 문을 찾기로 결심한다. 어린 소년이 생각할 내용이 아닌 듯 보이지만 몇 생에 걸쳐 보리심을 발하고 수행한 사람이 태어났다면 가능한 일이다.

“삼계의 생사는 성곽이 되고 교만한 마음은 담장이어라. 어리석은 어둠에 덮여 탐욕과 성냄의 불길이 맹렬히 타오릅니다. 오묘한 지혜의 청정한 해가 대자대비의 원만륜으로 능히 번뇌의 바다를 마르게 하니 원컨대 조금만 저를 살펴주소서. 저를 가르쳐 주고 보호해주소서, 제석이여 저를 살펴주소서. 부디 해탈의 문을 열어주소서, 보리의 길을 말씀해주소서!”

문수는 선재의 간절한 바람을 들으며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공양하는 것이 모든 지혜를 구족하는 길이니 힘들다고 쉬지 말고 행복한 마음으로 실천하라 한다.

“보살은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행을 닦아야 합니까?” “부처님이 될 원력을 지니고 보살의 길을 가라. 보현행을 닦아 보리도를 성취하라. 지혜로 이르는 길을 선지식이 일러주리니 찾아가 법문을 들어라.” 

한 스승에게서 어떤 것을 배웠다고 해서 자만심을 가지고 ‘이제는 보살도에 대해서 다 알았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은 선재동자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순례를 떠난다. 문수보살의 안내로 선지식을 찾아 남쪽으로 순례 가는 동자, 남순동자(南巡童子)의 길이 열렸다.

[불교신문3463호/2019년2월16일자] 
 

원욱스님 공주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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