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찾은 조계사 선림원에서는 여느 전통사찰 선방과 다름없는 경건하고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자기를 찾는 길엔 무거운 침묵이 함께 할 뿐이다. 사진은 재가 불자들이 방선하는 모습. 김형주 기자

동안거 해제 앞둔 조계사 선림원 정진 현장

참선은 과연 우리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물론 시대를 앞서간 선지식들의 수행일화만 보더라도 이를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각박한 삶을 사는 일반인들에겐 과거 수 천 년 전의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찾았다. 음력 10월 보름부터 세 달간 스님들과 똑같이 동안거 수행을 하고 있는 선림원(禪林院) 불자들을. 오는 19일(음력 1월15일) 동안거 해제일을 앞둔 지난 11일 막바지 정진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선림원은 서울 조계사가 운영하는 참선전문 수행기관이다. 경내를 지나 교육관 건물 4층을 향해 조심조심 올라가니 법당 문 앞에 ‘참선 중 절대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걸렸다. 여느 전통사찰 선방과 다름없는 경건하고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전11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여 명이 참선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참선입문과정을 이수하고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불자들이어서 일까. 정진에 들어간 이들은 흔들림이 없다.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자기를 찾는 길엔 무거운 침묵이 함께 할 뿐이다.

선림원의 시작은 오전6시부터다. 45분씩 정진하고 5분 포행 이후, 10분간 휴식하는 방식으로 오후9시까지 운영되고 있다. 벽 한 쪽에 붙어있는 ‘자율선원 청규’가 눈에 들어왔다. 참선 본방에서 하심(下心)과 묵언 정진을 기본으로 한다는 맨 위 조항 아래로 총 17가지의 규칙과 기타 소칙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를 3회 이상 어길시 영구 퇴방 조치한다는 내용도 있다.   
도심 속에 이렇게 여법한 수행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운 순간이다. 직장인, 가정주부, 은퇴자 등 연령과 직업도 다양했지만 이곳에선 모두 다 같은 수행자이다.

45분 정진 5분 포행 10분 휴식
아침 6시부터 15시간 정진
하심과 묵언, 17가지 ‘청규’

“역시 이 공부밖에 없구나…”
선림원 수행자들 이구동성


정진 기간 중이라 어렵게 허락을 얻어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참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일상생활에서 피부에 와 닿는 변화가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불자들의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과거엔 몰랐던 지혜를 얻었다는데 뜻을 함께했다.

김성대(73) 거사는 선림원에서의 정진을 위해 평택에서 매일 새벽 첫차를 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동안거가 이어지는 동안, 오전7시부터 오후9시까지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화두와 씨름하고 있다. 불교의식과 경전공부도 두루 했지만, 6~7년 전 참선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고부터 ‘역시 이 공부밖에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특히 “겸허하고 당당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이 증장됐다"며 "선지식들의 말씀 하나하나가 삶의 큰 기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어록에 나오는 ‘즉시현금(卽時現今) 갱무시절(更無時節)’의 가르침을 늘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다. 김 거사는 “과학문명 발달로 앞으로 300살, 400살까지 사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사람의 삶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이 없듯, 우리 생활과 가장 가까운 불교, 그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참선 수행을 보다 많은 이들이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 40줄에 들어설 즈음 불교공부를 시작한 주정화(49) 씨도 참선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이전까지 체득할 수 없었던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남편이나 자녀를 대할 때 자신의 기준이나 생각으로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말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마음속의 꽃을 활짝 피우시라’는 법정스님 법문을 마음에 새기고 정진하고 있는 주 씨는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로부터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어 선림원 정진이 더욱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선림원에서 만난 불자들은 공부의 근기도 예사롭지 않다.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경구 한 두 개 쯤은 달달 외우고 있다.

이날 마지막으로 만난 오정선(64) 씨도 “업(業)의 장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덕에 대해 설하고 있는 금강경 16분을 늘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수행하면서 타인과 다툼이 줄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습관을 멀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좌복에 앉아 참선하는 수행자에겐 해제는 결제의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선림원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는 새롭게 참선 공부에 함께할 불자들을 모집 중이다.

선림원은 오는 3월7일 제13기 수행 강좌를 개강한다. 총 2년4학기 과정으로 간화선의 이해와 사상, 수행 이론의 확립과 수행 실참 등을 주제로 한 강좌로 진행된다. 수행 교과는 간화선과 선의 역사, 육조단경, 참선경어, 선가귀감, 선요, 수행실수 등이다. 조계종 불교대학(원)을 졸업한 불자나 조계사 참선입문과정을 이수한 불자,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 이수자 등을 대상으로 지원자격이 주어지며, 접수기간은 28일까지 선착순으로 40명을 모집한다. 졸업 후에도 계속 수행 정진할 수 있도록 자율선원을 1년 내내 오전6시부터 오후9시까지 운영하고 있다. 

서울 금강선원도 오는 3월부터 참선프로그램을 개설한다. 기초와 중급, 고급 등 교육과정을 단계별로 나눈 것이 특징이다. 기초참선은 3월8일부터 5월24일까지 <좌선의>를 교재로, 중급참선은 3월2일부터 5월25일까지 <수심결>을 교재로, 고급참선은 오는 27일부터 5월29일까지 <심우도>를 교재로 불자들을 지도한다. 

봉은사는 올해부터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9시부터 다음날 오전4시까지 참선철야정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도법사 스님의 소참법문에 이어 40분 정진, 20분 포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계사도 시민선원을 운영하며 불자들의 수행을 돕고 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자율정진으로 진행되며, 지도법사 스님으로부터 수행 점검도 받을 수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철야참선정진도 이뤄지고 있다. 길상사도 불자들을 위한 상설시민선방을 운영하고 있다. 매월 둘째 주 오후9시부터 다음날 오전4시까지 주지 스님을 지도법사로 시민선방철야정진도 실시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 법련사, 대구 동화사, 부산 범어사, 홍법사 등에서도 주말 참선을 통해 정진을 이어갈 수 있다.

사찰에서의 참선이 특별한 것은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있다는 점이다. 수행이 잘 안 될 땐 경내를 걸으며 사색에 빠질 수도 있다. 기해년 새해, 공부하고 참선하는 불자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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