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병원 불자회, 스리랑카 노동자 대상 무료진료 현장

“회사 바쁘다. 감기니까 (주위에선) 괜찮다 괜찮다고만 했다. 병원 못가고 약도 잘 못 먹었다.” 지난 2월10일 양주 스리랑카 법당 마하보디사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아누라드 우데앙(42) 씨가 서툰 한국말로 약 한 달 전 독감으로 사망한 동료 이야기를 하다 이내 고개를 떨궜다.

고국의 가족을 챙기기 위해 낯선 땅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는 이주노동자가 100만 명인 시대. 하지만 여전히 노동조건과 권리는 열악한 수준이다. 이들에게 언어와 문화만큼 적응하기 어려운 것도 한국의 겨울이다. 고향에선 평생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추위 때문이다. 아누라드 씨도 “겨울이 정말 무섭다”고 했다.

이런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이날 모처럼 반가운 일이 생겼다. 고려대 병원 불자회(고의불)가 의료 봉사팀을 꾸려 무료진료를 펼친 것이다. 봉사팀에는 박종훈 고려대 안암병원장(정형외과 교수)을 비롯해 내과 전문의 성화정 교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이영미 교수 등이 함께 했으며, 간호사와 약사, 사찰 봉사자들도 힘을 보탰다.

부처님을 모신 10평 남짓한 여법한 법당은 일일 진료소가 됐다. 몸을 챙길 여유가 없는 노동자들도 이날만큼은 마음 편히 전문의로부터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진료는 기본적인 문답 후 혈압, 혈당 체크 등 기초검사를 거쳐 내과와 외과에서 처방을 받은 뒤 조제된 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역시나 감기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았다. 약을 나눠주면서 ‘감기약으로 졸릴 수 있으니 기계를 만질 때 조심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장시간 육체노동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과 먼지가 많은 작업환경 탓에 두통과 안질환, 피부질환을 호소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아가라 다르마시리(43) 씨는 “병원이 멀다. 일하는 날은 못 간다”며 “직접 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마하보디사 주지 와치사라 스님도 “큰 사고가 나면 (사업장에서) 병원에 데리고 가지만, 보통은 잘 보내주지 않는다. (병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며 “환절기나 특히 겨울철 일 년에 두 번 정도라도 이런 진료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휴일도 반납하고 진행한 봉사지만 의료진들은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김보영 고려대안암병원 약제팀 부팀장은 “불교에선 베푼다는 생각도 없이 베풀라고 가르치지 않느냐. 병원에서 근무하다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남편과 자녀와 함께 온 황경임 간호사도 “남을 위한 일이 결국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불자회 의료진은 총 32명의 노동자들을 돌봤다. 영하의 추위로 예상보단 적은 인원이 진료소를 찾았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박종훈 안암병원장은 “일회성이 아닌, 병원을 꼭 필요로 하는 이들이 제 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원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창립한 불자회는 현재까지 10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미얀마와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등 해외는 물론 국내 이주노동자·소외계층 의료봉사 등을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또한 구세군브릿지센터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개원하고 인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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