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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의 세계 불교민속 순례] <3> 베트남의 스님들, 여성들틱낫한 스님 “평화를 만들려거든 평화가 되어라”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2.0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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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이타의 소신(燒身) 

틱광둑 스님이 소신 장소로 타고 간 승용차.

시인 이은봉이 지은 ‘연탄재’라는 시에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더니, 제 몸 허옇게 태워 사람들 밥 짓다가 스러졌구나. 부처님 마음으로…”라는 구절이 있다.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는 소신(燒身). 이타의 자비심과 자기실현의 의미가 함께할 때 부처의 마음이 된다는 것을 시인은 가장 낮은 연탄으로써 이야기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연탄처럼 자리이타의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온전히 타는 마음이 소신으로 드러났을 때, 그것은 자살도 자기희생도 아닌 대자비심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수많은 소신이 있었고, 베트남 틱광둑 스님의 소신 또한 크나큰 충격과 감동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 1956년 미국의 지원과 천주교의 배경을 지닌 독재자 응오딘지엠이 남베트남의 대통령이 되면서, 부패와 타락을 일삼는 한편 국민 대부분이 불자인 나라를 기독교국가로 만들고자 스님들을 체포하고 사원을 봉쇄하며 노골적인 불교탄압이 이어졌다. 1963년에는 부처님오신날의 봉축행사를 금지시킴에 따라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규탄하던 수많은 스님들이 목숨을 잃고 투옥되면서 불교탄압이 극에 달하였다. 

이에 6월11일, 당시 65세의 틱광둑 스님은 소신을 결심하고 사이공의 십자대로에 가부좌한 채 몸에 불을 지폈다. 격렬한 불길 속에 꼿꼿이 정좌한 스님의 모습을 보고 인류는 경악했고 베트남의 실정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님의 소신은 국민단결의 촉매제가 되어 반정부시위는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스님들의 연이은 소신이 따랐다. 이러한 저항의 힘이 미국을 움직이게 하여 10개월 만에 지엠정부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스님이 주석했던 중부 후에의 티엔무사(靈읾寺)는 독재에 대항한 불교의 상징으로 베트남사람들이 어느 곳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원이다. 이곳의 뒤뜰에는 스님이 소신장소로 타고 갔던 승용차가 전시되어 있으며, 오랜 시간의 화장에도 녹아 없어지지 않고 형체 그대로 숯이 된 스님의 심장사진을 볼 수 있다. 이 심장은 다른 곳에 보관중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 불타는 심장을 만나기 위해 줄을 잇는다. 

지극한 평화의 몸짓

베트남불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주의정권 아래서 끊임없이 탄압받고 있다. 1967년 추방되어 프랑스로 망명한 틱낫한 스님이 38년간 단 한 차례도 고국을 방문할 수 없었던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틱낫한 스님의 평화운동은 물론, 국내 민주화운동의 선두주자인 베트남불교연합 스님들은 강제구금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불교가 탄압 속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늘 권력이 아닌 국민의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틱낫한 스님은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는 핵무기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화라고 하였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라는 간디의 말을 인용하며 “평화를 만들려거든 평화가 돼라, 평화로우라”고 말한다. 지극한 평화와 부드러움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넓히며 전쟁과 무력을 조금씩 해체시켜가는 스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붓다’를 느낀다. 스님이 깨달은 화두는 ‘나는 도착하였다. 나는 집에 있다’라 한다. 지금 이 자리에 이미 와 있는 집, 그것은 내 안의 부처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스님이 세운 남프랑스의 수행공동체 ‘플럼 빌리지’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동시에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 눈길조차 맞출 수 없었다. 화와 두려움과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두 그룹을 떼어놓고 각자 내면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수행을 시작했고, 둘째 주에는 자비롭게 듣고 말하는 수행으로써 상대도 나와 똑같이 고통을 겪었음을 깨닫게 되어, 셋째 주부터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걷는 명상이 가능해졌다. 이 일화는 우리 모두는 홀로일 수 없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지난 2013년 한국을 찾은 스님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특히 ‘멈춤 그리고 힐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플럼 빌리지 법사단의 관세음보살 독송에 실어 보여준 스님의 손짓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손바닥을 펴 가슴에 얹어두었던 손을 천천히 움직여, 춤을 추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지어보인 수인(手印)은 지극한 평화의 몸짓이었다. 

갈대와 강철, 외유내강의 여성

베트남여성들이 메고 다니는 ‘어머니의 지게’.ⓒlovebee718

“베트남여성은 부드러운 갈대와 같지만 강철입니다.” 1968년에 베트남을 방문한 국제민주여성연합회 총서기가 한 말이다. 연약하고 온화하지만 강인한 의지와 행동력을 지닌 베트남여성의 외유내강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들은 유교전통이 깊고 분가가 쉽지 않은 나라에서 대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 가정과 생산현장에서 일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기른다. 

시장에 가면 상인은 대개 여성이다. 장대 양쪽에 광주리를 매달고 채소, 과일, 꽃, 생필품을 가득 담아 팔러 다니는 이동식 노점도 여성의 전유물이라, 이름마저 ‘어머니의 지게’로 불린다. 웬만한 남성도 감당하기 힘든 무게지만 한쪽 어깨에 거뜬히 짊어지고 다니는 모습이 베트남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된 지 오래이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경비원이나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은 물론, 이삿짐 운반과 건설현장의 막노동에 이르기까지 남성의 영역에 속하는 생산활동의 주체로 여성이 나란히 서 있다. 

그녀들에게 공존하는 남성상과 여성상은 전쟁참여에서 정점을 이룬다. 외침이 많았던 역사 속에서 베트남여성들은 조국의 독립을 되찾는 모든 전쟁의 일선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수많은 여성영웅이 출몰하는 한편으로 ‘긴 머리 군대’라는 이름을 얻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비해 베트남남성들은 노점찻집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으로 흔히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 크고 작은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들이 사회로 복귀했을 때, 모든 분야의 일자리를 여성들이 도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베트남남성들의 성실함을 보더라도 그들은 ‘본의 아닌 백수, 당당한 백수’라는 게 김영신 선생의 분석이다. 

하노이의 여성박물관 로비에는 ‘베트남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모든 어려움을 누르고 가족과 평화를 굳건히 지켜온 베트남여성들을 상징하듯, 왼쪽 팔로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간 아기를 든든히 받치고 오른손은 아래를 향해 힘껏 뻗친 모습이다. 그녀들의 강인함은 전쟁의 파괴로부터 가정을 지켜내기 위한 의지에서 싹트기 시작했고, 질곡의 역사 속에서 많은 것을 감내하며 평화의 주춧돌이 되기에 이르렀다. 

수인(手印)을 짓는 틱낫한 스님. 그림=구미래

모계(母系)의 여러 모습

여성이 생계를 책임져온 역사가 관습처럼 굳어져 냉전에서 벗어난 지 오래인 지금도 베트남은 마치 모계사회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하노이 인근 현의 한 설문조사에서, 가정의 주요 역할과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을 때 70% 이상이 ‘여성’이라 답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베트남여성의 모성과 책임감은, 이른 시기부터 수많은 여신을 숭배하며 모계를 중시해온 그들의 신앙과 관련된 것일까. 

각려효 스님은 베트남불교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모계의 영향을 꼽았다. 이에 불교를 여성적 종교로 만들어 인도 출신의 남성부처가 베트남에 들어와 여성부처로 변화하는가하면, 모성적 자비심이 두드러진 관세음보살은 성별을 초월한 존재이건만 아예 ‘관세음어머님’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구름·비·천둥·번개의 4신(四神)을 여신으로 섬겨왔으니, 이들 신이 불교와 결합해 부처로 좌정한 모습 또한 여성성이 두드러질 법하다. 

다오마우교(母道)라는 이름을 지닌 베트남의 무속은 성모를 중심으로 탄탄한 신앙체계를 갖추고 있다. 신의 체계는 하늘-산-땅-물(天山地水)의 ‘모 4부’로, 자연의 근간을 이루는 대상에 어머니를 대입하였다. 여기서 인간계에 해당하는 지부를 뺀 ‘모 3부’를 삼신(三神) 어머니라 하여 그 탄생일인 3월 삼짇날이면 너도나도 제물을 준비해 사당으로 모여든다. 성모는 때로 관세음보살이나 옥황상제의 감독을 받기도 하여 불교와 도교의 신적 존재를 높은 서열에 두고 있다. 성모의 하위 신으로 오행할머니, 육부할아버지, 각 열두 명의 고모, 삼촌, 선녀를 두어 우주 속 인간의 삶을 모계의 질서체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위상과 나란히 비구니스님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여성의 높은 위상이 남녀평등을 뜻하는 건 아니다. 마을에서든 정부에서든 실권은 남성이 쥐면서, ‘공적 업무를 맡은 남성’과 ‘사적 업무를 맡은 여성’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남편과 자식을 대표해 조상의 제단 앞에는 설 수 있으나, 정치적 결정에 개입할 수 없는 여성들이다. 베트남 남부의 상좌부불교에서는 비구니스님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북부와 중부의 대승불교에서도 비구스님과 차별이 엄연한 승단문화와 겹쳐지는 대목이다. 

[불교신문3462호/2019년2월6일자]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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