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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록 '잃어버린성지']<1>서울 청연사현대불교史 아픈 상처로 '한양 비보사찰' 사라지다
1200년을 이어온 서울 하왕십리 청연사는 재개발사업에 밀려 2009년 12월 폐사됐다.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푯말이 없다면 천년고찰 청연사가 있었다는 것조차 알기 어렵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암벽이 옛 청연사의 배산이다.

무학대사 7일 관음기도로
조선왕조 도읍 정한 성지

대처승 점유상태서 매각
부지 확보 외엔 손 못대

분쟁사찰 꼬리표 뗐지만
미입주사찰 그대로 있어

일제강점기와 정화의 시기를 거친 한국불교 근현대사는 격동의 시기였다. 과거와 현재의 단절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 속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미처 지키지 못하고 사라진 사찰도 있다. ‘현장기록, 잃어버린 성지’는 그렇게 사라진 사찰들을 찾아나서는 기획이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적지 않은데도 보전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사찰을 불교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내 역사적 교훈을 새기고자 한다.

청연사는 서울 하왕십리 종남산에 있던 천년고찰이다. 당시 주소는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998번지다. 신라 흥덕왕2년(827) 창건된 것으로 중창기(1924)에 전한다.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청연사는 어느 이름이 맞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여러 개를 가졌다. 安靜寺와 安定寺가 혼용돼 왔고, 한자로 靑蓮寺(청련사)로 쓰이고 있지만 각종 문건에는 청연사로 표기돼있다. 역사적 기록에서 한자가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는 있지만, 청연사처럼 4개의 명칭이 혼용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4개의 명칭을 지닌 사연은 복잡한 한국불교 현대사의 아픔과 맞물려 있다. 청연사는 조계종의 공식 이름이다. 사찰공부에 ‘대한불교조계종 청연사(靑蓮寺)’로 명기돼 있다. 하지만 한자로 표기되는 사료에 나타나는 표현은 청련사다. 안정사라는 명칭은 청련사로 개칭되기 이전의 명칭이며, 1970년 태고종을 창종한 대처승측에서 조계종의 청연사에 대항해 사용한 이름이다. 태고종은 청연사를 양주로 이전하면서 청련사라는 이름을 다시 쓰고 있다.

청연사는 조계종이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미입주사찰’이다. 과거로부터 전승돼온 사찰은 대처승을 내보내고 비구승이 인계했으나, 청연사는 대처승측의 반발로 인수받지 못한채 분쟁상태로 남았다. 한국불교 현대사를 거치며 4개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대처승측이 점유하고 있는 미입주사찰은 청연사 외에도 순천 선암사, 서울 봉원동 봉원사, 홍은동 백련사, 일원동 불국사, 인천 용궁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봉원사는 조계종과 태고종간 합의로 경내지 외의 토지를 조계종이 인수했다.

옛 청연사 전경.

우여곡절의 사연을 담은 매각으로 하왕십리 청연사는 2010년 아파트단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철거됐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청연사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지금은 그 이름을 잇는 두 개의 사찰이 있다. 조계종 청연사와 태고종 청련사다. 

대웅전을 철거하자 뒤편의 암벽에서 가로 1m, 세로 40cm, 깊이 30cm 크기의 감실과 부조로 새겨진 마애불이 발견됐다. 마애불은 조선 후기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된 민불 형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감실 옆으로 명문도 나왔다. 음각으로 나무산왕대신지위(南無山王大神之位)이라 새겨졌다. 감실과 명문은 기존의 청연사에 있던 부조 약사여래불과 함께 성동구 향토유적 2호로 지정돼 있다.

청연사는 조선 건국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7일간의 관음기도를 통해 한양 도읍을 정했다는 기록(청련사사적기)이 남아 있는 점과 이 지역 지명이 왕십리(往十里)인 점 등을 연결해보면 조선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왕십리는 도성과의 거리가 10리인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당시 이름은 ‘안민보국(安民定國)’을 인용한 안정사(安定寺)였다. 이후 오행오방(五行五方)에 따라 한양을 보호하는 비보사찰로 동쪽의 청련사, 서쪽의 백련사(홍은동), 남쪽의 삼막사(안양), 북쪽의 승가사(구기동)를 두었다는 <청련사사적기>의 내용에서 청련사로 개칭되거나 혼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막사사적기(1771)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조선왕조와 함께 한 청연사의 역사적 가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조선 후기 제작된 대동여지도의 ‘도성도’에 청연사의 옛 이름인 안정사(安定寺)라는 이름이 있다. 한양을 보호하기 위한 네 방위의 비보사찰 가운데 동쪽의 안정사, 서쪽의 백련사, 북쪽의 승가사가 지도에 명기돼있다.

옛 청연사는 사라졌으나 청연사에 있던 성보는 일부 남아 있다. 대처승측이 이전한 양주 청련사에 남아 있는 청연사의 성보가 이를 잘 보여준다. 비구승과 대처승간 분쟁 상태에 있는 동안 청연사 성보는 공식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왕십리 청연사가 매각된 이후 대처승측이 이전한 양주 청련사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대웅전에 있던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등 삼존좌상이 복장물을 통해 1670년 조성됐고, 원통보전에 있던 관세음보살상은 1651년 조성한 것을 확인했다. 이 외에도 현왕도(1880), 비로자나괘불(19~20세기초), 칠성도(1866), 지장시왕도(19세기 후반), 아미타불회도(1880), 감로도(1880), 산신도(1880), 독성도(1880) 등이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뒤늦게 지정됐다. 17세기 조성된 아미타삼존좌상과 관세음보살상의 경우 같은 시대에 조성된 불상이 대부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점을 감안하면 그에 준하는 가치를 지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의 청연사는 조계종의 현대사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재개발사업에도 지켜낸 사찰이 적지않다. 미입주사찰이었다는 이유가 매각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사찰부지만 존재하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전승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양주로 이전한 대처승측 청련사는 옛 청연사의 정통성을 잇기 위해 각종 세미나를 열어 논문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계승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라도 옛 청연사의 명성과 가치에 걸맞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역사‧정통성 잇기 위한 노력 ‘절실’

조계종 청연사가 소유하고 있던 경내지 2437㎡(738평)가 2003년 6월 한 건설사에 매각됐다.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과 당우에 대한 권리도 넘어갔다. 당시 청연사를 점유하고 있던 태고종 스님들은 2년 뒤인 2005년 같은 건설사에 태고종 청연사 소유 토지 6457㎡(1953평)와 건물을 매각했다. 그 뒤에도 청연사는 2009년 12월까지 운영됐다.

청연사는 결과만 놓고 보면 재개발사업에 자리를 내어주는 대신 두 개의 사찰이 됐다. 소유자와 점유자가 분쟁을 종식하고 각각의 사찰을 일굴 수 있게 됐다.

조계종 청연사는 부지매각과 동시에 1만여평의 대체부지를 매입했다. 서울 서초동 우면산에 위치해 있다. 청연사 소유의 부지가 생겼으나 각종 규제에 묶여 건축불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이름만 잇고 있을 뿐이다. 청연사에 남아있던 성보도 모두 태고종측이 소유한 상태다.

태고종 청련사는 양주에 대체부지를 마련하고 사찰을 이전했다. 대웅전을 비롯해 대적광전, 극락전, 원통보전, 명부전, 삼성각, 종각 등을 갖춘 대찰로 거듭났다. 1940년대 건립된 청연사 대웅전을 해체이전해 원통보전으로 쓰고 있다. 현재 재단법인 천년고찰 청련사로 자리잡고 있다.

조계종 청연사는 대처승측과의 갈등이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미입주사찰이다. 분쟁사찰이라는 꼬리표를 뗐지만 옛 청연사의 명맥과 역사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가 중요한 숙제로 남은 셈이다. 옛 청연사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대처승측이 양주로 이전한 청련사 전경. 대체부지를 확보했으나 청연사의 명맥을 잇기 위한 불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조계종과 달리 청연사의 정통성을 잇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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