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각사 주지 정목스님이 만든 ‘작은사랑’ 후원회는 1997년부터 1년에 두 번, 치료비 전달식을 갖고 서울대병원 백혈병 환아 20명에게 300만원씩 치료비를 지원한다. 2013년 있었던 치료비 지원 전달식. 사진=정각사 제공

서울대병원 법당 지도법사 인연으로
백혈병 소아암 아동에 관심 갖게 돼

1년에 두 번 난치병 아동 40명에 
300만원 치료비 정기적 후원해

“스님, 이번에 우리 딸이 결혼해요. 딸에게 ‘잘 살라’는 축하 의미로 ‘작은사랑’에 10만원 보냅니다. 아픈 아이들을 위해 써주세요.” “이번에 어머니 49재를 지냈는데 유품으로 남기신 것이 있어요. 큰 금액은 못되지만 제가 갖기보다는 ‘작은사랑’ 후원회에서 백혈병 아이들을 위해 써주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에 올린 기도 덕분인지 아들이 이번에 어렵게 취업했어요. 약소하지만 5만원만 보탤게요.” 

25억원. 서울 정각사 ‘작은사랑’ 후원회가 지난 21년 동안 백혈병 환아에게 지원해온 치료비총액이다. 정각사 주지 정목스님이 1997년 시작한 ‘작은사랑’은 1년에 두 번, 서울대병원에서 백혈병 소아암 치료를 받고 있는 환아 20명에게 각 300만원 치료비를 지원한다. 스님과 신도, 익명의 후원자 등이 정기·비정기적으로 돈을 모아 한 해 후원금 1억2000만원을 모으면 서울대병원이 후원 아동을 추천, 선정된 아동에게 후원금을 전한다. 부처님오신날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5월과 12월이 되면 치료비 전달식을 위해 후원자들은 물론 치료비를 전달받는 아동과 그 가족들이 정각사에 모여 마음을 나누고 희망을 얻는다. 지금까지 42회 전달식을 통해 800여 명 이상 아동이 ‘작은사랑’ 치료비 지원으로 새 삶을 얻었다. 

곳곳에서 모인 작은 정성은 아이들 인생을 바꿨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 건강하게 성장해 지금은 강릉에서 복지사로 근무하는 아이, 제주도 국제학교에 입학해 꿈을 펼치고 있는 아이 등 듣기만 해도 뿌듯한 소식이 때마다 들려온다. ‘불수능’이라 불렸던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뒤 정각사에 돈을 돌려 줘 화제가 됐던 서울 선덕고등학교 3학년 김지명 군도 그 중 하나다. 다른 단체와 달리 완치 확률이 아주 낮은, 생명이 위독하거나 연이은 재발로 희망을 잃어버린 백혈병,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동과 그 가족이 ‘작은사랑’ 우선 후원 대상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기적같은 소식이다.

지금이야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리지만 시작은 참담했다. 1980년대 후반,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대병원 법당에서 지도법사 소임을 맡게 된 정목스님에게 어느 날 갓난쟁이 아빠가 찾아왔다. “스님, 저는 아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제 대신 아픈 우리 아이 손 한번만 잡아주세요”라던 30대 젊은 아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신생아 중환자실에 어렵게 발을 들여 놓던 길, “몸이 오그라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스님은 당시를 떠올렸다.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병실에 어른 팔뚝만한 자그마한 아기들이 주먹보다 작은 머리, 실핏줄 혈관에 주사바늘 6~7개를 꽂고 곳곳에 누워있었다. 인큐베이터에 갇혀 겨우 숨만 쉬는 아이들을 보며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어렵게 법당 문을 두드린 아기 아빠가 떠올랐다.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만 같은 위태한 모습으로 헐떡헐떡 호흡하는 갓난쟁이에게 다가가 “비단실 하나 얹는 느낌”으로 조심스레 손을 갖다 댔다. “아가야,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단다. 힘 내야지...” 

종교인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겨우 손을 떼 돌아 나서던 길,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들이 왜 이런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하나, 출가 수행자로서 나는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단 1명의 아이라도 작게나마 후원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백혈병 환아 치료비 지원 벌써 21년. 치료비를 모연하기 위해 그간 제대로 된 홍보, 모금 활동 한번 한 적 없지만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5000원, 1만원, 5만원, 때때로 동전 가득한 저금통이 모여든다. 부산 한 사찰에서 근무하는 종무소 직원은 소식을 듣고 100만원을 보내왔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사찰에 덩그라니 돈과 편지봉투만 남기고 사라진 적도 있었다. 치료비 지원을 받은 아이가 성인이 되거나 그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 이모, 삼촌들이 “어려운 때 지났으니 은혜 갚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후원자가 되는 일도 있었다.

완치까지는 억대 치료비가 드는 까닭에 금액이 늘수록 후원 규모를 확대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이 일지만 그 때마다 정목스님은 ‘작은사랑’에 환아를 추천해온 신희영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말을 떠올린다. “스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해주세요. 차도가 없어 삶을 포기하기 직전인 위중한 아이,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에게 치료비가 적고 많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완치 여부, 종교를 떠나 아무것도 묻지 않고 후원하고 격려해주는 ‘작은사랑’ 후원회 존재만으로도 이들에겐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충분한 위로가 되는 걸요. 지금처럼만 해주세요.”

해가 가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한다지만 올해도 1년에 두 번, 정각사에 ‘작은사랑’이 모인다. 스님과 신도, 후원자들이 모여 백혈병 환아, 그 가족에게 괜찮다 토닥이고 덕분에 너도 나도 잘 살고 있다, 그러니 이 기운으로 힘든 일 이겨내고 좋은 날 맞이하자 다짐하는 시간이다.

“법당 한 채 짓는 대신 불사하는 마음으로 사람 한 명 살리는 일을 하자” “작은 절이지만 수행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인연 따라 보시하자” 누차 강조하는 정목스님 말마따나 정각사 ‘작은사랑’ 후원회는 앞으로도 별다른 모연이나 홍보 활동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보여지는 것, 액수를 떠나, 진심이 담긴 마음이 꾸준히 전해질 수 있다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작은사랑’ 후원회 설립 정신이자 원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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