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정희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서


영원한 고통은 없다. 영원한 슬픔은 없다. 캄캄한 밤이 쏟아지면 곧 새벽이 일어선다. 한파와 동토의 겨울은 지나가고 실버들과 햇살의 봄이 온다. 고통과 슬픔이 오거든 고통과 슬픔의 정면을 보자. 정직하게 떳떳하게 마주 대하자. 마치 고통과 살을 맞댄 것처럼. 

시인은 끈질긴 생명력을, 억장이 무너져도 다시 살아 일어서는 정신을 우리들의 어머니에 빗대기도 했다. 그래서 시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서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라고 썼다.    

[불교신문3457호/2019년1월19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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