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는 교리와 설화 융합…‘눈으로 보는 경전’

인도 기원정사 벽화 처음 그려
가장 오래된 불화 아잔타 석굴
열반 500년후 불교회화 제작
시대 지역 따라 다양하게 ‘발전’

가장 오래된 불화가 있는 인도 아잔타석굴의 제9굴. 기원전 2~3세기에 조성됐다.

불교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불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봄이 오면 아름다운 꽃을 보러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을 찾아, 가을이면 단풍구경하러 절을 찾곤 한다. 요즘같은 엄동설한에도 눈 내린 산사의 한적함이 좋아 절을 찾는 이들도 많다.

일주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저 멀리 산신각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아름다운 색채로 장엄되어 있어, 이곳이 바로 사바세계의 물욕과 욕망을 벗어버리고 부처님의 세계로 나아가는 불국정토임을 보여준다. 뿐 만 아니다. 전각 내부는 붉고 푸른 단청으로 가득하며, 부처님의 뒤, 심지어 어두컴컴한 뒷벽까지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불교에서는 언제부터 이렇게 사찰을 그림으로 장엄하기 시작했을까. 경전에 의하면 인도의 기원정사에서 처음으로 벽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수닷타 장자가 제타(Jetta)태자에게서 동산을 보시 받아 세웠다는 사위성의 기원정사는 지금 옛 건물은 모두 다 무너지고 벽돌로 만든 기단만이 남아있지만, 석가모니 재세시 바로 이곳에 부처의 생애와 전생이야기를 비롯하여 석가모니가 신통력을 행하는 모습(大神通變), 인간이 윤회하는 모습(五趣生死輪圖), 창고문을 지키는 야차 등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재세시라고 하면 지금부터 약 2500여 년 전인데, 과연 그때 기원정사에 이러한 그림들이 그려졌을까? 경전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여러 가지 주제의 그림들이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적어도 석가모니를 지금 모습처럼 그린 그림은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살아있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입멸한 후 약 500년 뒤까지도 석가모니를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 예배하는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가마쿠라 시기인 14세기에 그려진 ‘아미타성중내영도’로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신과 같이 숭배받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모습을 만들거나 숭배할 필요도 없었으며, 열반 후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석가모니는 계시지 않기 때문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형상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배 대상으로서의 부처님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본생도와 불전도처럼 석가모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조차도 석가모니를 직접 그리거나 조각하지 않고, 보리수·법륜·불족적(佛足跡)·연꽃 등의 상징으로 대신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그림으로 알려진 인도 아잔타석굴의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도의 동부 오랑가바드 현에 위치한 아잔타석굴은 기원전 2~3세기경에 처음 개착되었는데, 이때 개착된 9굴과 10굴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벽화가 남아있다. 워낙 오래되어 벽화 대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행렬도와 본생도, 장식적인 그림 등이 일부 남아있지만, 아잔타 벽화 어디에도 부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석가모니를 점차 신적인 존재로 숭앙(嵩仰)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석가모니 열반 500여 년이 지난 1세기 후반~ 2세기에 이르면 드디어 석가모니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불교회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화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북쪽으로는 실크로드,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로에 위치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에서는 석굴사원을 중심으로 찬란한 불교벽화가 꽃을 피웠다. 실크로드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굴사원이 개착된 곳은 남로에 위치한 미란(Miran)이었다. 1906년 영국의 고고학자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이 미란의 사원지에서 3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벽화를 발견하였는데, 커다란 눈에 오똑한 코를 지닌 삭발한 동자승과 양 어깨에 날개가 달린 천사모습의 인물상 등이 마치 그리스, 로마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실크로드가 동, 서양문화의 교류지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 감숙성 투르판 베제클릭 석굴사원에 있는 서원화.

실크로드 북로에 위치한 쿠차(Kucha)는 구마라집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쿠차의 대표적인 석굴인 키질(Kizil) 석굴은 입구에 미륵보살설법도, 내부 중심주의 뒤쪽 벽에 열반도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또 주실의 원통형 천장에는 마름모꼴 구획 안에 시비왕본생(尸毘王本生), 마하살타본생(摩訶薩陀本生), 비릉갈리왕본생(毘楞竭梨王本生), 월광왕본생(月光王本生), 선사태자본생(善事太子本生) 등 다양한 내용의 석가모니본생도와 불전도, 인연설화 등이 그려져 있다. 

굵은 윤곽선과 원색의 짙은 채색, 흰색과 녹색·청색·벽돌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윤곽선을 굵게 처리하고 강한 입체감을 주는 기법은 격렬하고 동적인 느낌을 준다. 천산 아래 위치한 투르판(Turfan)의 베제클릭(Bezeklik) 석굴에는 전생의 석가모니가 과거불에게 공양하고 서원을 발하여 미래에 성불한다는 수기를 받는 내용을 그린 서원화(誓願畵)가 특징적이다. 서원화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設一切有部毗奈耶藥事)〉중 15개에 달하는 게(偈)를 도해한 것인데, 화면 중앙에 거대한 부처 입상을 배치하고 그 좌우에 공양자를 배치한 구도를 취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돈황(敦煌)에도 일찍이 석굴사원이 개착되었다. 돈황석굴에는 4세기부터 원대까지 1000여 년간에 걸쳐 조성된 불설법도(佛說法圖), 불교설화도, 변상도, 불교사적화(佛敎史蹟畵) 등 다양한 벽화가 그려졌다. 6세기 중엽까지는 석가모니의 전생이야기(jtaka)를 주제로 한 본생도,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불전도가 주요한 주제였는데, 고졸하면서도 굵은 윤곽선의 인물 표현, 안면의 강한 하이라이트 기법, 인물의 S자 자세 등에서 실크로드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수·당대에 이르러 강한 입체감과 강렬한 채색 위주의 서역화풍 대신 선묘(線描) 중심의 중국적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하였다. 

당대 이후에는 석굴사원 뿐 아니라 일반사원에서도 벽화와 불화가 즐겨 조성되었다. 10세기에는 특히 선종화가들이 신속하면서도 간략하게 선종의 취지를 살려 그린 선종화가 유행하였는데, 관휴(貫休)의 16나한도는 수묵으로 강한 선묘법을 구사한 대표적인 선종화이다. 이어 남송~원대에는 항구도시 영파(寧波)에서 육신충(陸信忠), 육중연(陸仲淵), 김처사(金處士) 등이 시왕도와 나한도, 십육나한도, 열반도 등을 제작하여 널리 일본에까지 수출하였다. 영파불화는 붉은색과 흰색의 강렬한 채색, 화려한 문양이 특징적이다. 원대 이후에는 라마교에 근거한 티베트불화 양식이 널리 유행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산서지역을 중심으로 수륙화(水陸畵)를 비롯한 벽화가 다수 조성되었다.

4세기부터 원대까지 1000여 년간에 걸쳐 조성된 불화가 있는 돈황석굴의 275굴. 이 작품은 5세기로 추정된다.

인도에서 실크로드, 중국, 한국으로 전래된 불화는 바다 건너 일본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서는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아스카시대(6세기 전반~710)부터 불화가 조성되었다. 이 시기 불화는 한반도와 중국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주구지(中宮寺) 소장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 호류지(法隆寺)의 옥충주자(玉子)와 금당벽화(金堂壁畵) 등에는 고구려·백제 양식과 함께 새로운 초당(初唐) 양식이 가미된 음영법과 사실주의양식이 보인다. 나라시대(710~783)는 중국대륙의 양식을 받아들여 도다이지(東大寺) 광배 연화장세계도(蓮華藏世界圖), 쇼소인(正倉院) 소장 수하미인도(樹下美人圖), 야쿠시지(藥師寺) 소장 길상천도(吉祥天圖)에서 보듯 정교한 필선과 섬세한 채색 등에서 성당양식이 엿보인다. 

헤이안시대(784~1184)에는 견당사를 통해 중국 밀교미술이 본격적으로 수용되면서 밀교화가 성행하는 한편, 후기에는 말법사상의 유행에 따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계불화가 많이 조성되었는데, 고야산 곤고부지(金剛峰寺)소장 아미타성중내영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천인, 보살들이 주악을 연주하며 내영하는 모습을 장엄하면서도 극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다. 이어 가마쿠라시대(1185~1333)에는 송대 불화양식이 전해지면서 헤이안시대에 비해 채색의 화려함은 줄어든 반면 필선은 강하고 힘차게 변하였고, 무로마치시대(1334~1573)에는 선종의 유행으로 선림(禪林) 문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수묵화가 발전함에 따라 불화는 점점 쇠퇴기를 맞이하였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불교의 심오한 교리와 설화를 시각적으로 담아낸 불화는 그야말로 ‘눈으로 보는 경전’이자 불교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불교신문3456호/2019년1월16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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