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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불국토] <23·끝>목각탱조각으로 나투신 부처님…조선 대표 융복합 문화재
  •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9.01.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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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조각해 만든 후불탱
17세기 후반 경북에서 시작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발전
조각승 고안 독창적 미술품 

문경 대승사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 1675년, 국보 제321호.

지난 봄, 서울 정릉에 위치한 경국사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사찰 문화재를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고려 말에 창건되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경국사는 왕실사찰답게 많은 성보가 남아있는데, 그날 가장 주목받은 문화재는 바로 보물 748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었다. 평소에는 유리장 안에 모셔져 있어 자세한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유리장을 제거하고 나니 나무에 조각하고 금으로 채색한 부처님이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대웅전에 들어가면 중앙에 놓인 불단 위에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고, 부처님 뒤에는 불화가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경국사를 비롯하여 문경 대승사, 예천 용문사, 남원 실상사 약수암, 상주 남장사 등에는 부처님 뒤에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목조설법상이 걸려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목조설법상은 조각품이지만 전각 안에 봉안된 불상 뒤에 거는 탱화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목각탱 또는 목각탱화라고 불리는데, 전국의 사찰에 몇 점 밖에 남아있지 않다. 

목각탱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은 1675년에 조성된 대승사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으로, 최근 국보 321호로 지정됐다. 세로 346.8cm, 가로 278.9cm의 이 설법상은 꽃살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대웅전 안에 후불탱으로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10개의 나무를 잇대어 만들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조선후기의 불화와 같이 군도식 구도를 이루고 있으면서 단의 구별이 뚜렷하여 존상들이 서로 겹치지 않은 채 3~4층을 이루고 있다. 

문경 대승사 목각탱 관계 문서.

2매의 판목으로 이루어진 상단에는 과거칠불 중 첫 번째 부처인 비바시불의 명칭이 적힌 원형의 장식을 중심으로 좌우에 구름을 타고 오는 6구의 타방불이 배치되었으며, 중단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범천 및 제석천, 10대제자, 사천왕 등 총 25구의 존상이 배치되어 있다. 3~4등신 정도의 짧은 체구에 방형에 가까울 정도로 넓적한 얼굴, 각진 콧날 등은 조선 17세기 불상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단은 활짝 핀 9송이의 연꽃과 연잎, 연봉우리로 장식된 아미타불의 극락연못이 새겨져 있다. 

9송이의 연꽃은 중앙에 상품상(上品上)이라고 쓰인 연꽃을 중심으로 좌우에 4개씩 배치되었는데, 8개의 연꽃에는 상품중(上品中)에서부터 하품하(下品下)라고 적혀있어,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제14관인 상배생상(上輩生想)에서 제16관인 하배생상(下輩生想)까지를 연꽃으로 표현한 구품연지(九品蓮池)에서의 왕생장면 임을 알 수 있다. 중단에 아미타8대보살을 배치하고 하단에 구품연지를 배치한 구성은 16·17세기에 간행·유통된 <근수정업왕생첩경변상도(勤修淨業往生捷徑變相圖)>의 도상과도 유사하다. 

목각탱의 하단 아미타불 뒷부분에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있다. 이 목각탱이 태백산 부석사에서 조성되어 1869년에 문경 대승사로 옮겼다는 내용이다. 현재 대승사에 전해오는 문서에 의하면 이 목각탱은 원래 부석사에 있던 것인데 1862년 대승사에 화재가 나서 법당과 승방이 모두 소실되어 새로 법당을 중수하였으나 불상을 조성할 형편이 되지 않자 부석사에 있던 목조설법상을 옮겨왔다고 한다. 그런데 6년 뒤인 1875년에 부석사에서 반환을 요구하여 시비가 일었고, 이에 다음해 대승사에서 부석사 조사전의 수리비 250냥을 주기로 하고 소송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사찰 간의 성보(聖寶)의 이동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예천 용문사 목각탱.

문경에서 멀지않은 예천 용문사에도 목각탱이 한 점 남아있다. 원래 용문사 금당을 창건할 때 봉안됐던 목각탱은 나무에 도금을 하고 존상의 머리와 이목구비 등에 채색을 해서 화려한 느낌을 준다. 세로 265cm, 가로 218cm의 틀에 화염불꽃모양의 장식판을 붙이고, 사각형의 나무틀에는 각 장면의 내용과 화기, 범자(梵字), 팔괘문양, 연꽃조각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화면 한 가운데에는 아미타불과 8대보살과 제자, 사천왕을 배치하고 아래 쪽에는 극락구품연꽃이 넝쿨처럼 좌우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배치했다. 하단의 청화백자꽃병에서 솟아나오는 9송이의 둥근 연꽃 안에는 각각 ‘상품상(上品上)·상품중(上品中)·상품하(上品下), 중품상(中品上)·중품중(中品中)·중품하(中品下), 하품상(下品上)·하품중(下品中)·하품하(下品下)’, ‘당극락지계보지구품(當極樂之界寶池九品)’ 등의 명문이 적혀있어, 여기에 표현된 내용이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구품연못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극락회 사이로 연봉오리·연꽃·연잎 줄기, 구름 등이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극락이 연꽃으로 덮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조여래설법상.

상주 남장사에는 보광전과 관음선원에 각각 목각탱이 남아있다. 보광전 목각탱은 현재 보광전의 주불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뒤에 봉안되어 있는데,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지만 문경 대승사 목각탱과 구도와 형식, 조각 기법 등이 유사하여 제작 시기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7매의 장방형 판목과 상부 1매를 합친 총 8매의 나무판 중앙에 아미타여래를 배치하고 상하 4단으로 나뉘어 아래에서부터 사천왕상, 8대보살과 범천·제석천, 10대제자를 배치했다. 본존불의 머리에서 뻗쳐나가는 서운과 천개 및 존상들 사이에 표현된 연봉우리, 연잎과 넝쿨들은 아미타불이 설법하는 극락정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관음선원에 후불탱으로 봉안된 목각탱은 최근의 조사에서 목각탱 뒷면에서 ‘강희삼십년을해(康熙三十四年乙亥)’라는 묵서가 발견되어 1695년에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세로 162㎝, 가로 195㎝의 크기로, 중심부를 이루는 5매의 판목과 상, 하부 각 1매를 합친 총 7매의 나무판으로 이루어졌다. 가운데의 3판목에는 아미타여래와 8대보살을 2단으로 배치하고 좌우 판목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사천왕을 배치했다. 아미타상은 방형의 큰 얼굴, 간결한 옷주름 등에서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늙은 노인의 모습인 가섭존자와 젊은 스님의 아난존자, 부릅뜬 눈에 갑옷으로 무장한 사천왕 등이 사실적이다. <천주산북장사사적기(天柱山北長寺事蹟記)>에는 이 목각탱이 1694년 화주 희선에 의해 조성되었고 1819년 천주산 상련암에서 남장사로 이안되었다고 적혀있어, 목각탱 뒷면에서 발견된 조성연대와는 1년의 차이가 있지만, 목각탱의 조성장소와 봉안장소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782년에 조성된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은 6점의 목각탱 가운데 가장 간략한 구도를 보여준다. 가로 183㎝, 세로 181㎝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판목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그리고 8대보살을 상하 2단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불상들은 모두 사각형의 넓적한 얼굴에 근엄하면서도 친근감이 넘친다. 좁은 어깨가 목 위로 올라붙어 마치 앞으로 숙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양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길게 연꽃의 대좌 밑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구품연지(九品蓮池)를 하단에 표현하는 대신 화면의 상단과 본존 위에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경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목각탱은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모두 13구의 불상과 보살이 조각되었는데, 다른 작품들과 달리 상단과 하단을 따로 마련하여 표현했던 구품연지(九品蓮池)와 과거칠불(過去七佛), 천개(天蓋)가 모두 하나의 화면에 표현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아미타여래는 작은 나발로 장식된 머리에 넓적한 얼굴 얼굴에 비해 왜소한 신체가 특징적이며,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두꺼워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양감이 절제되었는데, 대승사, 용문사의 목각탱과 화면구성 및 권속의 표현 등이 유사하여,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근대기에도 목각탱은 계속 조성됐다. 서울 연화사, 고양 흥국사, 단양 방곡사의 목각탱은 이전과 달리 나무의 두께가 얇아지고 아미타불 대신 석가모니, 치성광여래 등 표현되는 존상도 달라졌다. 시대에 따라 목각탱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 듯하다. 

17세기 후반 경상북도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목각탱은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후불탱으로, 조선후기의 조각승들이 고안해 낸 독창적인 불교미술품이다. 조각인 동시에 회화라는 두 가지 성격을 함께 갖고 있는 목각탱, 이것이야말로 바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융복합적 문화재가 아닐까. 

[불교신문3452호/2018년12월26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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