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할 물품이 있어 인터넷으로 시켰다. 배달 오는 날, 배달하는 직원이 전에 살던 집에서 전화를 줬다. 아차, 올해 이사를 와서 주소를 변경했어야 하는데!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나는 직원에게 사정을 얘기 하고 새주소를 알려주었다. 상대방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전화를 끊고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바로 옆 동네고 이왕 배달하시는 거 기분 좋게 해주면 좋을텐데, 직원의 쌀쌀맞은 목소리에 내 기분은 상했다. 마침 머리가 복잡해 산책을 하던 참이었다. 걷기는 뭔가를 생각하기 좋다.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려본다. 왜 내가 기분이 나빠졌을까. 기분 나쁘기는 직원이 더 기분 나빴을 텐데. 쌀쌀맞을 수밖에 없는 목소리는 당연한데. 

배달하려던 집까지 무겁게 짐을 가져왔는데 다시 차에 싣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건 그 직원인데. 본질은 내가 잘못했고 그 직원은 물품을 현재 내가 사는 집으로 무사히 배달 해주었다는 거다. 내게는 죄송하고 고마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직원의 목소리가 쌀쌀맞고 퉁명스럽다고 그 점만으로 나는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내 잘못은 바로 보지 않고 남의 잘못만 찾는 구나. 이래서 내가 잘못해도 상대와 싸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잘못 했을 때 얼른 사과하기. 만약 내 사과에 대해 상대가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내비춰도 중요한건 내가 잘못했다는 거다. 만약 내가 사과했는데 ‘왜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기분 나쁘다는 거야. 이러니 나도 기분 나쁘네. 어어, 나도 감정 상했어. 에이 그 정도 잘못가지고 왜 난리야. 그래서 지금 내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거야. 싸우자는 거야 뭐야…’ 뭐 이런 감정의 변화가 결국 잘못을 해도 상대와 당당하게 싸우게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내 감정이 아닌 항상 본질을 봐야 한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내가 잘못한 일, 내가 똑바로 가야 할 지점, 감정을 들추고 사실을 직시하기. 그럼으로 요즘 내 마음을 괴롭히던 문제에 답을 얻었다. 그래, 본질은 그게 아니었지. 나는 다른 욕심을 내고 있었구나 중얼거린다. 직원이 너무나 고마웠다.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그게 본질이다. 

[불교신문3452호/2018년12월26일자] 

이은정 동화작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