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고아가 되고 
절름발이가 되고 
동생들의 엄마가 되어서 
살아가는 불쌍한 ‘몽실이’ 

달맞이 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등 그의 동화는 
가슴을 텅 비게 했고 
무언가로 가득 차오르게 했다 

그의 동화는 팔고로 가득 차 
슬픔으로 채우지만, 
해탈의 문을 열지는 못했다 
권정생의 동화는 아직도 …

대구 대경문화원에서 주관하는 권정생 생가와 동화나라, 이육사 문학관 문학기행을 따라갔다. 우리나라 아동문학가 중 가장 슬픈 연민의 일생을 살다 간 권정생 선생의 생가와 그를 기념하는 동화나라를 먼저 탐방했다. 

겨울 안개가 자욱했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을 나와 조탑리에 들어섰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황량한 들판은 을씨년스러웠다. 일명 탑마을 뒤, 빌뱅이 언덕 아래에 있는 동화작가 권정생이 살던 집으로 간다. 좁고 구부정한 골목은 썰렁하기만 했다. 가난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마을, 골목 끝 늙은 감나무 앙상한 가지에 달려 있는 까치밥마저, 왠지 슬픈 안개처럼 보였다.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 팻말이 세워져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 없애 달라고 유언한 초라하고 작은 방 한 칸의 집은 보잘 것 없는 거지 굴 같았다. 집 뒤는 큰 암벽이 있고, 그 사이 실개천이 흐른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집을 보고, 중생을 구하고자한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심이 나의 마음에도 일어난다. 이가 갈리도록 절절한 권정생의 일생을 돌아보면, 우리는 무언가 울게 되고,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것을, 우리가 왜 슬픈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해야 하는가를, 인생이 왜 괴로움의 바다인가를 깨달게 된다. 

1937년 9월10일 일본 도쿄 혼마치의 헌 옷장수집 뒷방에서 그는 태어났다. 아버지 권유술과 어머니 안귀순 사이에서 태어난 5남2녀 중 넷째였다. 가난하고 힘들었든 유년시절을 보내고, 해방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청송 외가에서 살다가 1947년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정착한다. 다음해에 열 한 살의 나이로 일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나, 6ㆍ25전쟁으로 피난길을 나섰고, 1953년 열여섯의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가난과 전쟁으로 인하여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객지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평생 안고 갈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열아홉이었다. 차츰 결핵이 심해 콩팥과 방광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 서른 나이부터 몸밖에 소변주머니를 달고 살았다. 그야말로 비참한 삶이었다. 1968년부터 1983년까지, 빌뱅이 언덕 아래 슬레이트 단칸집(동화책의 인세와 마을사람들의 부조로 지어진 집)을 지어 나올 때까지, 집이 없어 이웃 문간방에서 살았다. 권정생의 동화는 이 작은 문간방에서 시작됐다. 권정생의 동화는 연민과 고통으로 구성돼 있다. 그의 동화는 상상만 같은 그의 체험에서 비롯된다. 결핵에 걸리고 가족과 헤어진 채 3개월 동안 경북 북부지방을 거지처럼 떠돌던 시절, 구걸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고마움과 몸으로 체험하며 얻은 경험을 잊지 못했다. 들판과 콘크리트 다리 밑 누추한 잠자리에서 겪은 아픔은 권정생 동화의 등뼈이나, 그의 고통을 건너가는 깨달음의 빛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고독과 추위 죽음과의 싸움을 견디고, 그의 동화를 집필해 나갔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시궁창 같은 삶 속에서 밤하늘별이 되려한 그의 영혼은 오히려 처절했다. 전쟁으로 고아가 되고, 절름발이가 되고, 동생들의 엄마가 되어서, 살아가는 불쌍한 몽실이(연속극으로 방송). 달맞이 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등의 그의 동화 속은 나의 가슴을 텅 비게 했고 다음에 무언가로 가득 차오르게 했다. 그의 동화는 팔고(八苦)로 가득 차 있어 눈을 슬픔으로 채우지만, 슬픔을 건너가는 해탈의 문을 열지는 못했다. 권정생의 동화는 아직도 미완이다.

[불교신문3452호/2018년12월26일자] 

김찬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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