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또 저물어간다. 지난 22일은 동지였다. 동짓날 빨간 팥죽 속에 든 흰 새알심을 먹으면 한 살이 더 늘어난다.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으니 한심스럽고 서글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더니 요즘 들어 더더욱 실감하게 된다.

<주역>에서는 동지를 기점으로 땅 밑에서부터 따스한 봄기운이 서서히 올라온다고 말했다. 동지는 겨울의 시작이 아니라 “봄이 시작되는 날”이어서다. 그러기에 동지는 새해를 맞이하는 전주곡인 셈이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지새우는 사이, 봄은 서서히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걸 알아낸 옛 선인들의 지혜가 놀랍다. 땅 표면으로 봄이 올라온 날을 음력 정월 초하루라고 한다. 봄은 봄이지만 아직도 매서운 추위가 남아있다고 해서 음력정월을 맹춘(孟春)이라고도 부른다. 영국시인 셸리는 ‘서풍의 노래’에서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리오”라며 마침표를 찍었다. 겨울은 봄을 알리는 서곡이기에 추운 겨울 속에 봄이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땅 속에서 남 몰래 봄을 준비했다가 반가운 봄소식을 알려주듯 내년에는 봄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소식들이 속속 들려왔으면 좋겠다.

동지엔 새로운 다짐을 하며 보다 나은 새해가 되도록 기도드렸다. 동지팥죽으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려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팥은 여름엔 더위를 이기게 하고 겨울엔 추위를 이기게 하는 건강식품이다. 그걸 미리 알고 먹도록 해준 조상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해마다 미리감치부터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해나가리라 다짐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버려 언제나 후회막심이다. 올해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 심신을 가다듬어 지난해보다 더욱더 정진에 매진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져본다. 기해년을 맞이해 멧돼지처럼 앞으로만 돌진하는 자세를 이어가고 싶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더 나은 나날이 이어져 불퇴전지(不退轉智)에 오르는 그날까지.

[불교신문3452호/2018년12월26일자] 

법념스님 논설위원·경주 흥륜사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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