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시 ‘바다와 나비’에서

이 시는 김기림 시인이 193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흰 나비와 푸른 바다의 선명한 색채의 대비가 돋보인다. 그리고 이 대비는 작고 연약한 나비와 아득하게 넓고 거친 바다의 대비로 확장된다. 하나의 나약한 존재가 품은 꿈과 그것의 좌절 경험을 이 시는 표현한 듯하다. 

일렁이는 바다를 ‘청(靑)무우밭’에 빗댄 대목도 인상적이다. 지난해에 ‘김기림 기념비’가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대학에 세워졌다는 소식이다. 이 시가 그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불교신문3455호/2018년1월12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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